언젠가 펼쳐질 우리 세상의 해피 엔딩을 위하여
핵무기를 가장 많이 가진 자가 핵무기를 욕하고, 테러리스트의 이면에는 안타깝게 희생 당하는 숱한 죽음이 있으며, 악당이라 불리는 자들조차도 그 내면의 고민이 있다. 현실의 악당은 교묘히 가려져 있거나 두 얼굴을 한다.
이 비틀린 세상에서 동화는 꿋꿋이 해피 엔딩을 고집한다. 바보처럼 순진하게도 낭떠러지 너머 해피 엔딩을 향해 달려가는 것이다. 역설이며 반어. 지금 당장은 이루지 못할 정의라는 걸 알면서도.
단순무지한 나는 그 어디엔가 신화 속 마고할미가 번듯이 살아 있을 거라 믿는다. 언젠가 펼쳐질 악당과의 한판 대결을 위하여. 우리 세상의 해피 엔딩을 위해서라도 동화가 쓰이고 읽혀야 하는 이유다.
-작가의 말 중에서
어른들의 세상에는 죄를 짓고도 벌 받지 않는 사람들이 더 많습니다. 벌을 받기는커녕 죄를 짓고도 잘 먹고 잘 사는 사람이 더 많지요. 그 이유가 권력 때문일 수도, 돈 때문일 수도, 명예 때문일 수도 있어서, 그렇지 못한 대다수의 선량하고 평범한 사람들은 이 불의를 보고도 그냥 꾹 참습니다. 못 본 척 지나칩니다. 포기합니다. 그걸 우리 아이들도 배워 갑니다. 그래서 세상에는 불의가 가득하고, 악순환은 계속됩니다.
과연 그 길 뿐일까요? 제대로 혼내고 혼나고, 벌주고 벌 받고, 깨우치고 뉘우치는 해피 엔딩은 정말 현실에 없는 것일까요? 현실에 없다고 그저 참고 지나치고 포기해야 하는 것일까요?
현실과 판타지를 자유롭게 넘나들며 풍자와 해학을 펼치는 이야기꾼 김기정이 말합니다. 현실은 그럴지라도 동화는 그렇지 않다고, 그래서는 안 된다고, 언젠가는 우리 세상에도 해피 엔딩이 올 거라고요. 그 해피 엔딩을 위해서 작가는 창조의 여신이자 모두의 어머니인 ‘마고할미’를 모시고 왔습니다. 그러고는 우리 신화와 옛이야기에 소외된 자들의 통쾌한 복수 이야기와 정의는 승리한다는 만고불변의 진리를 구수하고 신명나게 풀어내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