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까지도 러시아 모더니즘이 남긴 가장 수수께끼 같은 희곡의 하나로 평가받는 <발라간칙>에는 상징주의의 자기반성적 경향에서 비롯된 메타 상징주의적 특징이 선명하게 드러난다. 작품에 등장하는 세 쌍의 연인들은 그 자체로 러시아 상징주의의 발전 단계를 암시하고, 다소 우스꽝스럽게 그려진 신비주의자들의 모습에는 초기 상징주의에 대한 노골적인 조소가 담겨 있다.
메이예르홀트는 <발라간칙> 연출 직후 솔로구프의 <죽음의 승리>를 같은 극장 무대에 올린다. <죽음의 승리>의 서극은 본극을 연출하며 전통적 의미의 비극적 신비극 무대효과에 한계를 느낀 메이예르홀트의 주문으로 본극보다 나중에 쓰인 것이다. 블로크의 <발라간칙>에 대한 일종의 논쟁적 응답으로 읽을 수 있는 작품이다. <발라간칙>이 콜롬비나의 정체성을 둘러싼 등장인물들의 논쟁, 이어 점차로 드러나게 되는 콜롬비나의 실체 확인이라는 스토리라인을 축으로 전개되는 것처럼, <죽음의 승리>의 서극 역시 현실과 허구의 다양한 층위에서 여주인공의 형상을 둘러싸고 벌어지는 논쟁을 주된 줄거리로 한다.
쿠즈민의 <베네치아의 광인들>에서 18세기 베네치아는 “골도니와 고치, 그리고 롱기의 베네치아”로 정의된다. 곤돌라 뱃사공의 노랫소리, 가면극과 거리극, 사랑에 빠진 여인과 정부들, 환하게 불을 밝힌 도박장의 웃음소리, 방탕한 가장무도회 등 18세기 베네치아의 ‘전형적인’ 이미지들이 배치된다. ‘세계는 극장이다’라는 셰익스피어적 파토스로 가득한 작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