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화로 보는 재즈의 역사라는 부제가 이 책을 명확히 규정한다. 책은 재즈라는 음악이 어떻게 생겨났고 어떤 변화 과정을 거쳐 지금의 모습에 이르게 되었는지 만화의 형식으로 보여준다. 서문에서도 재즈 음악의 발전 과정을 시대 상황과 연결시켜 연대기적으로 다룬다고 설명한다. 즉 재즈 스타일의 변천사를 담고 있다.

내용 중에는 재즈사에서 명멸한 수많은 음악가들의 이름과 모습이 등장하니 재즈에 관심 있는 이들은 마음이 들뜨게 될 것 같다. 좋게 말해서 재즈의 왕초보라고 할 수 있는 내가 보기에도 쟁쟁한 이름들이 숱하게 쏟아져 나온다. 다만 어떤 음악가들은 매우 간단하게 소개되는 경우가 있어서 팬심에 따라 받아들이기가 다를 듯하다. 비밥, 하드밥, 쿨재즈, 컨템포러리 재즈와 같이 그 명칭만 알지 어떤 형식인지 모르던 재즈의 다양한 영역들이 망라되는 등 시간의 변화와 다른 영역의 음악-클래식, 록 등-의 영향, 재즈 자체의 변화 의지에 의해 이전과 다른 재즈 형식의 탄생과 타 영역의 음악이 미친 영향을 배제하려는 몸부림 등 재즈의 거의 모든 것을 알려준다.

책은 읽기 쉽고 이해하기 쉽도록 만화로 재즈의 역사를 소개하지만 다루는 인물의 숫자도 많고 재즈의 탄생 시점부터 음악 형식의 변형이 많아서 따라가면서 그 내용을 받아들이는 데에는 상당한 어려움이 있었다. 게다가 꽤 속도감이 있게 내용을 전개하기 때문에 재즈에 대한 앎이 전무하다면 따라가는데 애를 좀 먹겠다는 생각도 든다. 연주를 할 줄 모르는 입장에서 재즈 연주 기법을 소개하는 장면들은 읽어 넘기기에 다소 버거웠다. 물론 이 책을 대하기 전에 재즈에 대한 기초 지식을 거의 아니 전혀 보유하지 못했던 점이 그런 어려움을 야기했다고 볼 수도 있겠지만 음악 작법과 같은 테크닉을 알고 있다면 이해가 쉽겠다는 아쉬움이 들었다. 그래도 이 책을 통해서 개략의 개념은 이해할 수 있게 되었다.

재즈Jazz는 어디에서 유래된 낱말일까? 책에서는 그 어원이 정확하지 않다고 한다. 대체적으로는 19세기 남부 흑인들이 사용한 육체노동, 성적/외설적인 의미의 비속어로부터 시작되었다는 설이 힘을 얻고 있다(p.77)고 한다. 그 외에도 사냥, 추적, 쫒다의 의미를 지닌 Chasse나 Chase가 jass라는 단어와 연관이 있다는 설, 자이브 춤에 Ass를 갖다 붙인 합성어 Jive-ass에서 비롯되었다는 설 등 다양한 주장들이 있단다. 어떤 설이 되었건 고상하게 출발하지 않았다는 뉘앙스를 풍긴다. 그만큼 생활과 밀착된 환경 조건에서 재즈가 등장했다고 추정하게 된다. Jazz라는 용어가 통용되기 시작한 건 1920년대 전후(p.79)로 본다. 그 탄생지는 잘 알려진 뉴올리언스이고.

재즈를 잘 모르는 나로서는 Ragtime-잘 몰라도 이런 저런 음반에서 Ragtime이라는 이름이 붙은 곡들은 몇 번 본 적 있다-이 재즈의 영역 중 하나라고 생각했는데 오히려 재즈가 탄생하기 전 형성된 형식이라고 해서 새로웠다. 이와 같이 책에서는 블루스 음악의 태동, 크레올의 등장 등 재즈 음악이 등장하기 이전의 배경이 되는 상황과 자리를 잡아가는 초기의 모습을 재미있게 설명한다.

재즈 역사의 시작 시점부터 아는 이름들이 나오는 점은 다행스럽다. 루이 암스트롱, 듀크 엘링턴, 제리 롤 모튼 등은 예전에도 이름을 들어본 음악가들이다. 듀크 엘링턴은 한동안 음반도 몇 장 가지고 있었던 터다. (리처드 기어가 주연을 했던 코튼 클럽도 이런 시점을 배경으로 했다고 알고 있다)

책은 재즈의 여명기를 1900~1930년대로 통합해서 이해한 이후로는 10년 단위로 그 전개상을 펼친다. 1940년대는 위대한 과도기, 1950년대는 모던재즈 시대, 1960년대는 혼돈의 시대 속 재즈의 탈출구, 1970년대는 재즈의 퓨전, 1980년대 이후는 재즈의 다변화와 자기 성찰 등과 같이 구분해서 시기 별로 재즈가 어떻게 변화했는지 알기 쉽게 설명한다. 그 시기의 환경과 개인의 특성에 따라 음악의 흐름이 바뀌어 가는 모습은 음악의 진화 과정 그 자체라고 할 수 있다. 재즈의 영역이 얼마나 광대하고 다양한지 새삼 느끼게 된다.

백인의 재즈 음악이라고 하는 쿨 재즈의 시초를 빅스 바이더백으로 보는 통상의 시각에서 벗어나 흑인인 레스터 영으로 볼 수도 있다는 견해는 재미있었다. 예전에 재즈 좀 알아볼까 하고 이것저것 뒤질 때 누가 빅스 바이더백이 쿨 재즈의 시초라고 얘기하던 바를 머릿속에 집어넣고 있었기 때문이다. 레스터 영이 남긴 음원을 들어보면 그렇게 해석할 수도 있겠구나 하는 생각이 든다.

각 시기마다 등장하는 대가들의 이름을 보는 것은 즐겁지만 몇몇의 슬픈 죽음을 대하면 안타깝다. 약물에 중독되어 숨진 찰리 파커나 빌리 홀리데이는 슬프다. 블루스의 여왕 베시 스미스의 죽음을 설명하는 컷에서는 지독한 인종차별의 모습을 여지없이 볼 수 있다. 1937년의 일이니까 이제는 많이 달라졌으리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차별은 여전히 그 낯을 바꿔가며 존재하고 있으니 차별한다는 근본 주제는 바뀌지 않았다.

머리가 지끈거릴 만큼 복잡한 변천사를 거친 후 책은 대가들의 죽음으로 책을 마무리한다. 마일스 데이비스, 아트 블레키를 거쳐 디지 길레스피의 죽음이 책의 마지막을 장식한다.

이 책을 읽으면서 책에 나오는 여러 연주자들의 연주를 찾아서 들었다. 그냥 머릿속으로만 이해하기 보다는 그들의 연주를 들으면서 책을 읽으니 책에서 언급하는 연주 기법이나 음색 등이 좀 더 잘 와 닿는 느낌이었다. 재즈 음악에도 더 다가선 기분이었고.

다만 이왕 이런 기획을 한 김에 유럽의 재즈도 병행해서 다루었다면 좋았겠다는 아쉬움이 남는다. 유럽으로 간 미국의 재즈 뮤지션 얘기는 나오지만 유럽에서 발전한 재즈 얘기는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