많은 문인과 독자 들의 관심과 애정으로 명실상부 한국 현대 시의 고유명사로 자리매김하고 있는 문학과지성 시인선. 1978년 황동규 시집 『나는 바퀴를 보면 굴리고 싶어진다』로 시작한 문학과지성 시인선 시리즈는 지난 달 이수명 시집 『언제나 너무 많은 비들』까지 399권을 출간하였다. “문학의 자율성을 유지하면서 문학과 사회의 복잡한 연관을 추적한다는 문지의 고유한 특징”을 그대로 살리면서 “전위의 언어로 최극단의 세계를” 이루어 낸 문학과지성 시인선의 그 400번째 시집 『내 생의 중력』이 나왔다.
매 백번째 시집을 그 이전 1~99번까지의 시집에서 각 한 편씩을 뽑아 ‘시선집’으로 엮어온 전통을 이어, 이번에 400번째로 발간되는 『내 생의 중력』 역시 301번부터 399번까지 총 99권의 시인 83인의 작품을 선하여 엮었다. 1978년 문학과지성 시인선의 첫번째 시집을 낸 황동규와 시력 50년을 넘긴 마종기를 필두로, 한국 시의 중요한 전환점을 마련한 김혜순과 최승자, 1990년대 한국 시를 이끌었던 함성호, 박형준, 이원, 김소연 등을 거쳐, 기존의 문법을 해체하며 2000년대의 새로운 시세계를 펼쳐 보인 김행숙, 김민정, 황병승, 김경주, 그리고 2008년에 등단하여 문학과지성 시인선 400권을 통틀어 첫 1980년대생 시인인 유희경에 이르기까지. 수치로 환산할 수 없는 한국 현대 시의 흐름을 감상할 수 있다.
시의 얼굴은 시인의 얼굴이다. 시의 끼어듦과 스밈과 호흡은 시인의 외로움과 눈물과 숨결과 바람이다. 400호 시인선을 기념하며 여기 모인 시인의 초상은 시와 삶이 하나가 되길 희구하는 예술적 지향의 다양한 교차와 자신의 모습을 그릴 때에도, 그 이미지조차 시로 느끼고 경험해야 하는 고통과 희열의 동반 과정을 보여준다. 시와 시인이 하나된 사건, 생의 중력이 시가 되는 이 절박함 속에서, 우리는 우리와 닮은 얼굴을, 무수한 삶의 희로애락을 마주치게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