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작가가 한국어로 쓴 시집, 『단 하나의 눈송이』
어쨌든, 피할 수 없는 대목일 듯하다. 시의 보편성, 시집이 담아낸 개성 넘치는 세계, 시어가 얼마나 생동한가보다, 일본 시인이 ‘한국어’로 쓴 시집이라는 지점이 어쩔 수 없이 흥미로운 화제가 될 만하다.
“여기에 실린 시를 처음에 썼을 때는 먼저 일본어로 쓰고 나중에 한국어로 고쳤다. 그러다, 쓰면서 번역하기 어려운 말이 나오자 다른 말로 바꾸어 쓰고 또 한국어로 번역하기 쉬운 말을 골라서 쓰게 되었다. 그다음에는 처음부터 한국어로 생각하고 한국어로 쓰는 것이 오히려 편하다는 결론에 이르렀다.” ―「시인의 말」에서
수록시들 중 「소식」부터는 한국어로 생각하고 바로 한국어로 쓴 것들이다.
서투른 언어, 교배된 언어의 소산
시인은 비모어를 배우는 과정을 열 달이 아닌 십년 동안 공들여 키워야 가능한 태교의 과정으로 묘사하고 있다.
나무를 일본말로 KI라고 하며 한국말로는 NAMU라고 한다. 십년 전에 처음 한국말을 배웠을 때 ‘나무’란 낱말이 나의 가슴속으로 뿌리를 내렸다. 한국에 온 지 두 달 동안 줄곧 아래만 보면서 돌아다녔는데 유월이 되고 처음으로 눈을 들어 봤더니 그들이 잎사귀를 살랑거리며 서 있었다. 그들을 ‘나무’라고 부르면 내 속에서 ‘나무’가 답례했다. 십년 공들여 간신히 푸르게 자란 잎사귀들이 눈부시게 펄럭이면서.
―「광합성」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