옛글에서 뽑아낸 삶의 다양한 순간들 “궁궐 안에서 일어난 일에 대해서는 밖에서 알 수도 없고 알 일도 아닙니다만, 총애하는 사람이 있는데 전하께서 감추시면서 이 사실을 지적한 신하를 다른 죄에 얽어서 처벌하셨다고들 합니다. 전하께서 개인적으로 총애하는 이가 있다는 사실이 무슨 문제가 되겠으며, 무엇하러 그것을 숨기시겠습니까. 그래서 신은 사람들이 지나치게 억측하는 것일 뿐이라고 여겼습니다. 그런데 이제 보니 그런 신이 얼마나 어리석었는지 알겠습니다. 새어나온 사실들만도 이러한데, 저희의 이목이 닿지 않는 궁궐 깊숙한 곳의 일을 어찌 다 헤아릴 수 있겠습니까.” 지금으로부터 330년 전에 쓰인 상소문을 새롭게 번역한 내용의 일부다. 흔히 ‘한문’이라고 하면 고리타분한 유교 이념으로 가득하거나, 우리와 크게 관련이 없고 시대에 동떨어진 글이라는 고정관념으로 바라보기 일쑤다. 우리말과 통사 구조가 다를 뿐 아니라 시대 배경과 사유 방식, 문체, 관습까지 너무나 달라서 우리에게는 어떤 외국어보다도 어렵고 낯설게 느껴지기도 한다. 하지만 여기서 ‘궁궐’을 ‘청와대’로, ‘전하’를 ‘대통령’으로 살짝 바꾸면 지난해 온 나라를 분노하게 만든 국정농단 사태의 진실과 전혀 다르지 않음을 깨닫고 서늘한 전율마저 느끼게 될 것이다. 이처럼 한문으로 쓰인 옛글은 시대를 뛰어넘어 현대를 사는 우리에게 깊은 울림을 전해준다. 와이즈베리 신간『고전의 시선』은 1,000년 넘게 쌓인 우리 한문 산문 명편들 가운데 24편을 엄선하여 현대에 맞는 평설과 함께 원문에 대한 정확한 번역과 해설을 담았다. 이 책은 사회적인 이슈뿐만 아니라 아들을 잃은 슬픔, 늙어감에 대한 감회 등 인간으로 살아가면서 마주하게 되는 다양한 삶의 순간들을 번뜩이는 통찰과 아름다운 문장으로 담아내고 있다. 『고전의 시선』에는 옛글을 요약하거나 풀어 쓰면서 우리의 현실 문제에 적용한 작품도 있고, 옛글의 특정 부분을 확장하거나 초점을 달리해서 새롭게 접근한 내용도 포함되어 있다. 이 책은 작품마다 조금씩 다른 결합 방식을 취하긴 했지만, 오늘의 문제들에 대한 해답이 옛글에 이미 나와 있는 것처럼 교훈을 찾는데 급급하거나 무리하게 의미를 연결하려는 시도는 별로 눈에 띄지 않는다. 특히 저자는 단순히 문학 분야에만 제한을 두지 않고 좁은 의미의 수필 문학에 포함시키기 어려운 논설문, 기사문, 상소문, 편지글, 송별사, 묘지명, 제문, 서문 등 다양한 방식의 옛글을 소개한다. ‘좋은 글’이란 허구가 배제된 서사, 설득을 위한 논설, 실용적인 공문서 가운데도 당연히 존재하기 때문이다. 이제 고전에 기대어 올라섰을 때 열리는 새로운 시선이 독자로 하여금 새 글과 옛글 사이의 겹침과 균열 혹은 긴장을 발견하고 나름의 해석에 이르기를 기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