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사회의 모순을 날카롭게 해부한 고전
도시 빈민층이 되어버린 흑인들의 집단적 체험과 개인적 환멸
“사람이 살인을 할 땐 무언가를 위해서지요…… 그것 때문에 살인을 할 만큼 절실한 느낌이 들기 전까지는, 전 제가 이 세상에 정말 살아 있는지 알 수 없었습니다.” ―본문 中
비거 토머스라는 한 흑인 청년이 상류층 백인 여성을 우발적으로 살해하고 백인 경찰과 자경단에 쫓기게 된다. 죽음과 파국의 공포에 직면한 주인공은 자신을 공고하게 옭아맨 가난과 피부색의 덫, 그리고 백인 세계와의 관계를 통찰하게 된다. 미국 문학의 고전이자 흑인문학사의 기념비적 작품으로 꼽히는 『미국의 아들』은 뛰어난 소설일 뿐만 아니라, 출간과 동시에 미국 사회를 뒤흔든 ‘도발’이기도 했다. 당시 흑인 문제에 진보적 입장을 취했던 미국인들조차 살인자이자 빈민가의 불량배인 흑인 청년의 시점에서 미국 사회를 바라본 이 작품에 경악을 금치 못했으며, 숱한 화제와 논란을 불러일으켰다.
작품의 주요 무대인 시카고의 흑인 빈민가는 1890~1920년대에 걸쳐 약 이백만명에 이르는 흑인이 남부 농장지대에서 북부의 도시들로 옮겨갔던 ‘대이주’의 소산이다. 당시 그렇게 북부로 이주해온 흑인들은 뉴욕, 시카고 등지에서 도시 빈민층을 형성했고, 1920년대 말의 대공황은 이들을 더욱 극심한 위기로 내몬다. 『미국의 아들』은 이와 같이 ‘미국의 꿈’을 안고 북부로 이주했던 흑인들의 집단적 체험과 개인적 환멸, 그리고 그것들을 통해 얻은 깨달음을 담고 있다. 작가는 살인과 도주라는 긴박한 상황을 통해 당시의 사회상을 응축하여 그려내고, 흑인 청년 비거의 삶을 바로 그 인물의 관점에서 안에서부터 그려내면서 그의 느낌과 생각, 행동을 통해 흑인 하층민이 지닌 박탈감과 결핍감이 깊은 내면성을 획득하게 한다.
『미국의 아들』은 미국 사회의 구조적 모순이 집약된 도시 하층민 흑인들의 삶을 여실하게 묘사하고 미국 흑인이 처한 전형적인 상황이 미국의 사회적 모순의 핵심에 닿아 있음을 설득력 있게 그려내고 있다. 리처드 라이트는 흑인문학의 기본 정조를 이루는 ‘항의’를 온전한 의미의 ‘저항’으로 끌어올림으로써 미국 ‘흑인문학’의 신기원을 이룬 동시에, 미국 사회의 근본적 문제를 깊이 있게 탐구함으로써 ‘미국 문학’의 한 정점에 서는 성과를 이룩한다. 무엇보다, 이 작품이 지닌 보편성은 미국이란 특정 사회에서 흑인 빈민층이라는 특정 집단이 겪는 문제를 구체적이고 생생하게 드러냄으로써 오히려 피억압계층의 전형을 그려내는 데 성공했다는 점에 있다. 『미국의 아들』이 당대의 문제작에서 그치지 않고 미국 현대문학에서 고전의 반열에 우뚝 선 연유도 여기에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