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정양 초대 주미공사가 고종께 올린 ‘미국 보고서’
유길준의 《서유견문西遊見聞》보다 1년 앞선 조선 최초의 ‘서양 탐구서’
《미속습유美俗拾遺》는 초대 주미전권공사 박정양朴定陽(1841~1905)이 고종高宗의 명에 따라, 미국 현지에서 직접 보고 듣고 느낀 미국의 제도와 문물을 총 44개 항목으로 나눠 체계적으로 정리한 보고서 형식의 미국 견문기이다.
실무형 개화파 관료가 기록한 ‘공식’ 미국탐구서
1881년 신사유람단의 일원으로 일본을 시찰했던 박정양은 정부 요직을 두루 거친, 손꼽히는 실무형 개혁파 관료였다. 1887년 9월 조선 최초의 주미전권공사로 임명되어 떠날 때 고종은 그에게 미국 등 각국과의 친목 및 화호 도모 외에 “미국 정부와 인민의 정형을 파악하라”는 임무를 부여했다.
이에 따라 박정양은 미국에 머문 11개월 동안의 견문, 경험을 정리해 고종에게 보고했다. 이 보고서는, 비록 출간되지는 않았지만, 정부 요로의 관리들에게 읽혀 미국에 대한 이해를 높이고 대미 정책을 수립하는 데 많은 영향을 미친 ‘공식’ 미국 탐구서였다. 바로 《미속습유》다.
시대의 고민이 어린 ‘부국강병책’ 자료집
단순한 견문록이 아니다. 지리·역사에서 통치구조, 산업 진흥, 교육제도는 물론 복지시설 등 사회 인프라까지 다룬 박정양의 시선 곳곳에서 부국강병을 위한 고민이 드러난다. 교육을 통해 부국강병을 이뤘다며 ‘학교전學校田’을 언급한다든가 대통령을 비롯한 관료들이 퇴직 후에는 보통사람으로 돌아가고, 신문에선 대통령의 잘못이라도 보도한다든가 하는 대목이 그렇다.
당대의 지식과 발품이 결합된 생생한 ‘미국백과’
사용된 용어의 유사성 등에 비추어 보면 최한기의 《지구전요》, 위원의 《해국도지》, 후쿠자와 유키치의 《서양사정》 등 국내외 자료를 참고한 것이 분명해 보인다. 여기에 미국 현지에서 조폐창 견학 등 발품을 파는 한편 미국의 법규집, 교과서, 개인 전기 등을 바탕으로 미국 현황을 꼼꼼하게 정리했다. 말하자면 당대의 지식이 집약된 ‘미국백과’였다 할 수 있다.
유길준의 《서유견문》에 앞선 조선 최초의 서양 가이드
우리나라 최초의 서양 견문기로 알려진 유길준의 《서유견문》은 1889년 탈고되어 1895년 발간되었다. 《미속습유》는 내용 중 ‘역법’의 서술로 미루어 박정양이 귀국을 준비하던 1888년 11월 전후에 탈고된 것이 분명하다. 따라서 이 책은 《서유견문》보다 1년 앞서 쓰인, 우리나라 최초의 미국 견문기라 할 수 있다.
올해는 박정양이 미국 워싱턴 D. C.에 도착해 공사관을 개설한 지 꼭 130주년 되는 해이다. 문화재청과 국외소재문화재재단이 주관한 주미대한제국공사관 복원이 끝나 개관식을 앞두고 있기도 하다. 국외소재문화재재단이 앞서 번역, 출간한 박정양의 《미행일기》와 더불어 이 책은 당대의 고민, 미국관을 엿볼 수 있는 귀한 역사적 자료라 하겠다. 상세한 해제, 섬세한 번역에 더해 원문을 수록하여 일반 독자들의 이해를 돕는 한편 관련 연구자들에게도 충실한 자료 구실을 하도록 한 것 또한 이 책의 미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