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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업을 위한 인문학, 자본을 위한 인문학”
한국 사회에 인문학이 유행한다는 말이 나온 지가 거의 15년이 다 되어간다. 15년이면 상당한 사회변화가 일어나고도 남을 만한 시간이다. 인문주의란 ‘전복적 도전’과 거의 동의어다. 인문학적 사고는 반성, 회의, 비판이 핵심이다. 그러나 이 15년 동안 비판적 사유와 지성이 사회적으로 제고(提高)되었다는 증거는 어디에도 없다. 오히려 반대의 징후는 많다. 사회에는 인문학이 유행한다는데, 사회는 이상하게 점점 보수화되어왔다. 2016년 촛불혁명 이후 한국 사회가 이 굴레에서 잠시 벗어난 듯 보이기도 했지만, 전체적인 맥락에서 보면 보수화되어왔다는 사실을 부인하기 힘들다. 더 이상한 것은 사회에서는 인문학이 유행이라는데, 대학에서는 인문학이 다 죽어간다는 사실이다.
인문학은 기본적으로 반성적 학문이다. 본래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지식과 제도문물을 탐구의 대상으로 삼아 질문하고 비판하는 학문이다. 자유로운 성찰과 탐구, 비판과 질문이 인문학의 건강성을 유지시켜준다. 예를 들어 철학은 윤리학, 인식론, 논리학 등의 분과를 갖고 있다. 윤리학은 ‘도덕이란 무엇인가’, ‘A는 도덕적 가치가 있는가 없는가’ 같은 것을 따진다. 인식론은 사물이 우리에게 인식되는 과정을 탐구하기도 하지만, 우리가 인식한 것이 옳은지 그른지를 따지기도 한다. 말하자면, ‘생각에 대해 생각’하는 학문이다. 역사학이나 사회학도 반성적이다. 역사학은 인류나 민족, 국가가 걸어온 길을 되돌아보는 학문이고, 사회학 역시 인간 사회와 인간의 사회적 행위를 돌아보는 학문이다. 이런 반성적 학문들은 인간의 지성과 학문의 발달, 사회와 역사의 진보에서 꼭 필요하다.
현재 인문학 열풍의 실체는 기업 인문학 열풍이다. 기업 인문학은 비판 의식을 제고하는 것이 아니라, 비판 의식을 소거한다. 사회적 문제를 다루면서도 그 해결책에서는 사회를 거세한다. 교묘하고 영악한 논리로 주류적 사고에 영합하게 만든다. 현실 문제들을 해명하는 데 도움을 주는 것이 아니라, 현실 인식의 감각을 마비시키거나, 현실을 왜곡해 인식하게 만든다. 기업 인문학은 기본적으로 공부와 앎을 생산하는 체제가 아니다. 그래서 어느 순간 ‘반(反)공부’로 전환될 가능성이 크다.
『反기업 인문학』은 우리가 알게 모르게 받아들였던 인문적 담론들, 그저 막연하게 좋은 것으로 알았던 인문적 담론들, 우리에게 많은 영향을 미쳤던 인문적 담론들이 대부분 기업 인문학에 속한다는 것, 그리고 그것이 지금 우리 사고의 뿌리를 구성하고 있다는 사실을 담고 있다. 기업 인문학은 인문학이 기업 이익의 논리에 복무하는 것을 목적으로 한다. 인문학의 성격 자체를 변질시키는 기업 인문학은 궁극적으로 ‘인문학 해체’ 담론으로 이어질 수밖에 없다. 결국 기업 인문학은 물질주의와 과학기술주의와 경쟁체제를 포용하고 추동하는 불임의 인문학이자 불행한 학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