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여운형 呂運亨(1885∼1947) 독립운동가·정치가. 호는 몽양이며 경기도 양평에서 출생하였다.
우무학당을 졸업하고, 1909년 광동학교를 세워 청년들을 교육시켰다. 1914년 중국에 건너가 난징 금릉대학에서 영문학을 전공하다가 중퇴하였다. 1918년 파리에서 만국 평화 회의가 개최된다는 소식을 듣고 김규식을 파견하였으며, 이듬해 상하이 임시정부 수립에 참여하여 임시 의정원 의원이 되었다.
이 해 겨울, 일본이 조선의 자치 문제에 대해 의견을 타진해 오자, 장덕수 등과 함께 일본에 건너가 독립의 필요성을 적극 역설하고 돌아왔다. 1920년 고려공산당에 가입, 이듬해 모스크바에서 열린 피압박 민족 대회에 참석하고 돌아와 중국의 쑨원과 협력하여 중국 혁명을 적극 추진하였다.
1929년, 영국의 식민정책을 비판했다가 영국 경찰에 잡혀 일본 경찰에 인계되어 3년간 감옥생활을 하였다.
1933년 중앙일보 사장을 지내다가 곧 사직하고, 1944년 비밀 단체인 '조선 건국연맹'을 조직하여 독립운동을 전개했다. 이듬해 광복이 되자 '건국 준비위원회'를 조직하여 위원장이 되었고, '조선 인민공화국'을 세워 스스로 부주석이 되었으나 인정을 받지 못해 실패하였다.
12월 근로 인민당을 조직하여 당수로서 좌파 온건 세력을 규합하는 등 정치활동을 하다가, 1947년 한지근에 의해 암살당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