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원 강릉에서 태어나 1996년 [조선일보] 신춘문예로 등단한 최영규 시인의 세 번째 시집.
최영규 시인이 세 번째로 선보이는 시집 『크레바스』는 시집 제목처럼, 빙하가 갈라져 생긴 좁은 틈 사이로 生의 지각 변동을 켜켜이 눈여겨본 시인의 ‘틈새’가 놓여 있다. 이는 체험의 사유를 만나 읽는 이의 마음 깊게 길을 개척한다. “가늠할 수 없는/시간의 함정”(「크레바스」)에 빠지지 않으려고 안간힘을 쓸 때, 그 안에서 형태 없이 드리우는 쓸쓸하고 고독한 존재들을 뜨거운 눈으로 만끽한다.
‘산’과 ‘일상’이라는 테마가 두드러지는 시편을 통해 하나의 등고선을 따라가다 보면 시인이 확인하는 존재들의 음영진 인간사를 만날 수 있다. 그럼에도 “첫, 새순//땅을 뚫고 올라오는//하늘의 계시”(「첫,」)도 놓치지 않는다. 희망과 절망의 굴레 속에서 시인이 등반한 세계는 “살아서는 결코 건널 수 없는” 곳이기도 하며 “정상엔 아무도 살지 않았다”는 의미심장한 사실도 동반하고 있다.
자연과 일상이 하나의 몸에서 충돌할 때 어떤 이미지들이 펼쳐지는지, 이 시집은 몸소 보여준다. 이 시집의 시들은 말과 상상의 공장 속에서 성실히 자라는 언어들이 아니라, 온 감각으로 경험해온 것들의 크고 작은 산물이라 할 수 있다. 그 귀하고 값진 시인의 목소리가 우리 일상을 다시 작디작은 틈으로 초대하는 것은, 그 작은 균열로부터 거대한 관념을 갈라낼 수 있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영원을 지금이라고 하”(「빙하」)는 날들로부터, “눈 속의 허공과 눈 위의 허공을 건너야”(「눈사태」) 하는 우리의 모험이 시작되었다고 선언하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