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날, 할머니 손자 지호가 시골집에 놀러 와요. 명절도 아닌데 엄마 아빠도 없이 덜렁 남겨진 지호는 앞마당 신세인 물건들을 괴롭히던 악명 높은 장난꾸러기예요. 예전과 달리 풀이 죽고 힘이 없어 보이던 지호가 어느덧 시골 생활에 적응이 됐는지 논밭으로 쏘다니며 이상한 물건들을 하나씩 주워 와요.
하나같이 어딘가 부서지고 깨진 온전치 못한 물건들을요. 그러더니 장고의 냉동실에 집어넣는 거예요. 안 그래도 서러워 죽겠는데, 더러운 물건들을 집어넣으니 장고는 부아가 치밀었어요. 그런데 이상하게 지호가 하나씩 배 속을 채울수록 점점 속이 따뜻해지고 든든해지는 느낌이에요. 지호는 집으로 돌아가기 전, 할머니에게 신신당부하며 장고를 부탁해요. 그러고는 장고에게 ‘지호의 보물 상자’라는 뿌듯한 이름표까지 붙여 주지요. ‘장고’라는 첫 번째 이름에 이어, ‘보물 상자’라는 새로운 이름도 붙여 주는 지호의 모습에서 어른들이 보지 못하는 것에 세세히 눈길을 주고 어루만지는 아이의 순진무구함이 뭉게뭉게 피어나요. 이는 장고를 토닥이고 위로하는 치유제가 되어 주고, 더 나아가 자신처럼 소외되고 어딘가 완전하지 않은 물건을 단단히 품게 하는 힘을 주며, 독자에게 뭉클함과 따뜻함을 안겨 주지요.
장고를 통해 소중한 유년의 한때를 고이 묻어 두고 가는 지호의 모습을 보고 있노라면, 보물 상자처럼 소중했던 물건들과 함께이던 시절의 추억이 새록새록 떠오르며 애틋한 그리움이 번져요. 그리고 오늘 우리 곁에 있는 물건들을 한 번 더 쓰다듬어 주고 귀 기울여 주어야겠다는 마음이 샘솟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