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력 30여 년에 이른 정양주 시인의 첫 시집이다. 소멸과 생성의 시라고 해야 할까. 소멸이든 생성이든 시들이 한결같이 은근하다. 젖어 있으면서 맑은 가을하늘 같고, 말라 부서질 것 같은데 물속처럼 깊다. 거기 슬픔과 설렘과 바람들이 어려 자아내는 서정의 무늬들이 오래도록 시린 여운을 안겨준다. 시인이 노래하는 것은 작고 하찮은 것들이다. 폐교 운동장의 개망초, 죽은 지 한참인 마른 새, 기억마저 사라져가는 고향집. 특이한 것은 소멸에 기울 때나 생성에 기울 때나 그것들을 바라보는 어조는 애잔하고 슬프다는 것. 이것은 시인의 천성에서 왔을 것이다. 화려한 수사나 언어의 분절 없이 대상에 대한 명징한 묘사와 진술이 주는 시적 서정은 요즘 시집에서 좀처럼 얻기 힘든 즐거움을 준다. 어느 날 시인이 별을 보러 강에 가서 강물 속에 뜬 별을 볼 때, 별이 강물 속에서 튀어 오르고, 튀어 오른 별들이 모래알이 되고, 밤 깊어 서로 속삭이고, 서로 어깨를 토닥여 주고, 끼리끼리 모여 밤을 건너는 것처럼, “어깨 부축이며 함께 살아온 사람들 이름을 세다/지난밤 스무 살까지 다녀온” 시인의 삶이 강물 위에 뜬 별처럼 아름다운 시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