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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수 회의록 & 공진회
글쓴이
안국선 저
출판사
북앤북
출판일
2012년 2월 15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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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이미지

안국선

경기도 고삼(古三, 현 경기도 안성)에서 안직수의 장남으로 태어났다. 아들은 월북 작가 안회남(安懷南)이고, 친일정객이었던 안경수가 백부였다. 훗날 안국선은 안경수의 양자로 들어가서, 생부보다 그로부터 더 큰 영향을 받았다고 한다. 안국선이 1895년 관비 유학생으로 선발되어서 일본 게이오의숙(慶應義塾) 보통과에 입학한 것도 안경수의 절대적인 도움 덕분이었다고 한다.

안국선은 게이오의숙을 1년 만에 졸업한 뒤, 1896년 도쿄전문학교(지금의 와세다대학)에서 정치학을 공부하고 1899년 7월에 졸업했다. 그는 사상적으로 후쿠자와 유키치의 문명개화론에 영향을 받았다. 그에게는 문명화가 최우선의 과제였고 일본은 그 모델로 비쳤다. 아울러 ‘조선 우민(愚民)’에 대한 ‘교화(敎化)’와 대한제국 타도를 개혁과 진보의 지름길이라고 파악했다. 대신에 의병 운동을 ‘어리석은 백성이 멋모르고 날뛰는 것’으로 인식했다.

안국선은 1899년 11월 귀국했지만, 안경수와 박영효 관련 정변 사건에 얽혀 1907년까지 유배를 당한다. 유배에서 풀린 뒤에는 돈명의숙(敦明義塾) 등에서 교사로 일하면서 정치·경제 등을 강의했고, 여러 저서를 쓰는 등 활발한 사회 계몽 활동을 펼쳤다. 이후 1907년 11월 30일부터는 제실재산정리국 사무관-탁지부 이재국 감독과장, 국고과장 등 요직을 두루 거쳤으며, 1911년 3월엔 청도군수에 임명되어 2년 3개월 동안 재임했다. 결과적으로 나라가 망하는 마당에 황실 재산을 일본에 넘긴 일을 한 셈이었고, 그 공으로 청도군수를 하는 등 출세가도를 달렸다고 비판을 받기도 한다. 관직을 떠난 이후에는 박영효와 밀접한 관계를 말년까지 지속하면서 각종 사업에 손을 댔다(대부분 실패했다). 말년을 비교적 평온하게 보내다 1926년 서울에서 병으로 사망했다.

책 소개

분야청소년
《금수회의록》은 각종 동물들을 등장시켜 인간 사회의 부조리와 현실을 비판하고 풍자하는 우화 소설이다. 개화기 당시 타락한 탐관오리와, 풍속적 타락에 대한 비판 외에도, 외인에게 아첨하는 역적들이나, 무기로 남의 나라를 위협하여 빼앗는 불한당과 같은 표현으로 당시 일본 침략의 대한 민족의식을 강하게 표출한 작품이다. ‘나’라는 1인칭 관찰자 시점으로 관찰자인 ‘나’가 꿈속에서 인간의 비리와, 인간의 간사한 현실사회를 성토하는 동물들의 회의 내용을 기록하고 있다. 《금수회의록》에서 보여 주는 사회 비판 의식은 작가의 기독교적인 세계관에서 비롯되지만 금수만도 못하게 타락한 인간이 인간성을 되찾기 위한 대안으로 효도, 절개, 형제애, 부부간의 화목과 과거부터 전해 내려온 전통적인 가치관과 윤리 의식의 회복을 강조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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