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학이란 세계를 변혁해야 한다. 그러므로 철학자란, 사상가란 기왕의 시대와 불화할 수밖에 없다. 그러한 사상가는 필연적으로 “불온”한 인물이 되며, 또한 때때로 좌절하게 마련이다. 특히나 그가 질곡 많은 시대를 살았다면 그의 개인적인 삶은 시대의 모순을 그대로 드러내는 것일 수밖에 없다. 그렇다면 일제 식민지 시대와 해방공간, 분단정국, 그 이후의 냉전 시기라는 유달리 비극적이고 모순으로 점철된 현대사를 거쳐 온 우리에게, 과연 진정 시대를 고민하며 그와 불화했던 철학자/사상가는 누가 있었는가. 이상하리만큼 우리의 사상계는 평온하지 않았는가. 우리는 반문하게 된다. 그러한 사상가가 정말로 없었던 것인가, 아니면 있었으나 이제는 잊혀버린 것인가.
우리에게도 그러한 철학자가 있었다. 그가 바로 박치우(朴致祐, 1909~49)이다. 박치우는 1909년에 태어나, 1928년 경성제국대학 예과에 입학해 1933년 본과의 철학과를 졸업한, 서양철학 수용 1세대이다. 그와 같은 시기에 경성제대를 나온 인물들로는 신남철, 박종홍, 안호상, 김태준, 유진오, 배상하, 고형곤 등이 있다. 초기 한국 철학계에서 박종홍, 안호상 등이 관념론적 경향을 대표했다면 박치우는 유물론적 경향을 대표한 철학자였다. 이 두 경향은 당대에 뚜렷하게 구별되는 철학의 두 주요한 흐름이었다.
그러나 현재의 한국 철학계에 이르러서는 박치우로부터 이어지는 유물론적 철학은 그 연구 활동이 지극히 미미한 실정이다. 또한 서양철학 1세대에 대한 그동안의 연구는 박종홍에 대한 연구에만 집중되었다. 박치우의 글들이 박종홍의 글들과 너무도 밀접하게 관련되어 있는가 하면 또한 너무도 뚜렷하게 대비됨에도 불구하고, 즉 긍정적인 의미에서든 부정적인 의미에서든 서로 긴밀하게 얽혀 있음에도 불구하고 한 명은 철학계에서 거의 완벽히 잊힌 반면 다른 한 명은 영예를 누리며 살았던 것이다.(박종홍은 「국민교육헌장」을 기초하는 영예(?)까지 누린다.) 이런 점에서 박치우의 철학적 활동을 되살피는 것은 한국 서양철학의 역사를 복원하는 시도가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