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리뷰
  • 리스트
  • 구매
[eBook] 속자치통감 12권
글쓴이
필원 저/권중달 역
출판사
도서출판 삼화
출판일
2018년 8월 8일
  • 읽고있어요

  • 다 읽었어요

  • 읽고싶어요



책 소개

분야세계사
2010년 《자치통감(資治通鑑)》 294권을 완역·출간한
권중달 교수의 새로운 도전!

2017년 《속자치통감(續資治通鑑)》 220권의 번역을 시작하여
2018년 첫 출간을 맞이하였다!

◈《속자치통감》 역주의 의미
400여 년에 걸친 동아시아 역사의 결정체

1. 한족사(漢族史)가 아닌 동아시아의 역사
《속자치통감(續資治通鑑)》은 청대 필원(畢沅, 1730~1797)이 송(宋)이 개국한 960년부터 명(明)이 건국하는 해인 1368년까지 410년년간의 역사를 220권 235만 자로 편찬한 편년체 역사서이다.
이 400여 년 동안 동아시아에서는 많은 왕조가 병존하거나 부침(浮沈)하였다. 먼저 중원지역에서는 북송이 당말 오대를 거치면서 존재하였던 십국(十國)을 멸망시키고 일정한 정도로 통일왕조를 세운다. 그러나 북송보다 먼저 오대시절부터 있었던 거란족의 요(遼) 왕조 그리고 서부지역에서 독립한 서하(西夏)가 서로 남·북·서라는 삼각관계로 병존하며 대립하였다. 동아시아 지역인 한반도에서도 당말 오대라는 분열 상황에서 신라(新羅)와 고려(高麗)의 교체가 이루어지는 변동이 있었고, 월남에서도 정조(丁朝)·전여조(前黎朝)·이조(李朝)·진조(陳朝)·호조(胡朝)가 바뀌는 변동이 있어서 동아시아는 전체적으로 역동적인 변동의 시기였다.
그 후로 거란족 왕조인 요(遼)의 쇠퇴와 더불어 여진족(女眞族)의 금(金)이 동아시아 극동에서 출발하여 요와 북송을 무너트리고 장강지역까지 진출하여 그 세력 범위를 넓혀갔다. 그리하여 장강유역에서 금에 멸망한 송 왕조를 재건한 남송(南宋)의 황제가 금(金) 왕조에 의하여 책봉되고 스스로 질황(侄皇)을 자처하였던 시기였다. 다시 내몽골지역에서 출발한 몽골족은 동아시아 전역을 그 세력범위에 넣고 중동과 러시아, 동유럽까지 그 세력을 넓혔던 몽골제국을 이룩하였다. 그 몽골 세력의 일부는 전통적인 중원지역을 점령하고 원(元) 왕조를 건설하였고, 그것은 1368년 명 왕조의 건설까지 이어진다.
비록 《송사(宋史)》, 《요사(遼史)》, 《금사(金史)》, 《원사(元史)》라는 전통적 기전체 역사가 쓰여졌고, 그것을 《25사(史)》 속에 넣어서 마치 이 역사가 모두 중국의 전통왕조인 것처럼 오해하게 만들고 있지만 실제로 이 기간에 동아시아를 지배한 세력은 한족(漢族)이기보다는 거란족·여진족·몽골족 등 북방족이었다. 이렇게 이 기간에 북방민족들이 압도적으로 주도권을 가지고 역사를 이끌었던 기록이 바로 이 《속자치통감》인 것이다.
그러한 점에서 《속자치통감》은 10세기부터 14세기까지의 동아시아 역사를 한족적 시각이 아닌 동아시아적 시각으로 서술한 책이다. 다시 말하면 이 책을 통하여 동아시아의 역사가 한족 중심으로 이루어졌다는 허상(虛像)을 한 번에 깨 버릴 수 있는 책이다. 그러므로 ‘동아시아의 역사는 곧 중국사’라는 잘못된 역사 인식이나 역사관을 수정하는 가장 확실한 증거가 되는 책이라고 하여도 무방하다.

2. 객관적 역사기록의 백미
과거의 역사를 기록하는 목표는 시대에 따라서 변하여 왔다. 고대로 올라가면 올라갈수록 역사사실을 통하여 교훈을 얻으려고 하였기 때문에 감계사관(鑑戒史觀)이 주를 이루었다. 그래서 역사는 철학의 논리를 증명하는 자료에 지나지 않을 뿐이었다.
그러나 이렇게 저작 의도가 분명한 것은 자칫 저작자의 의도에 따라서 독자가 이끌려 가기 때문에 저자와 독자 간에 주종(主從)관계가 성립하게 된다. 그래서 역사책의 저자는 교주(敎主)가 되기도 하는데 가장 심한 것을 꼽는다면 공자(孔子)의 《춘추》나 주희(朱熹)의 《자치통감강목》 같은 것이다. 그러므로 이들의 사상이 전 사회를 지배하는 동안에는 학문의 주류는 훈고학(訓?學), 심성학(心性學)에 머물러 있을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17세기 명말(明末)에 오면서부터 경전(經典)을 진리라고 생각하였던 것의 허점(虛點)을 지적하기 시작하였다. 그때 설사 경전이 진리를 내포하고 있다고 하더라도 공자가 말한 내용이 2000여 년이 지난 현재에도 그대로 전달될 수 있는지에 대한 초보적 의문이 생긴 것이다. 전해 오는 동안 오자(誤字), 탈자(脫字), 연자(衍字)가 발생하였기 때문에 공자가 원래 말하였던 의도와 달리 내용이 잘못 전해졌는데도 불구하고 이 잘못 전해진 것을 옳은 것으로 믿고 있는지도 모른다는 생각이었다.
그래서 고증학(考證學)이 탄생하였고, 고증학은 사실에 근거하여 과장(誇張)하지도 축소(縮小)하지도 않는 그대로의 진실을 찾아가는 학풍인 것이다. 특히 고염무(顧炎武)에서 시작한 이 학풍은 절동(浙東)지역에서는 역사를 실사구시(實事求是)적으로 보고자 하는 학풍이 크게 일어나서 절동학파로 불리었다.
그 대표적인 학자인 필원(畢沅)이 중심이 되어 《문사통의(文史通義)》의 저자인 장학성(章學誠, 1738~1801), 풍집오(馮集梧), 소진함(邵晋涵, 1743~1796), 전대흔(錢大昕, 1728~1804) 등 당시 고증학의 최고봉에 있는 사람들이 교정하고 참여하여 이 책을 완성하였다.
물론 《속자치통감》이 나오기 전에 왕종목(王宗沐, 1524~1592)의 《송원자치통감(宋元資治通鑑)》과 설응기(薛應?, 1500~1574)의 《송원자치통감(宋元資治通鑑)》, 서건학(徐乾學, 1631~1694)의 《통감후편(通鑑後編)》 같은 책이 있었다. 하지만 이 책들이 지나치게 한족(漢族) 중심으로 쓰였다는 것에 불만을 품고 《요사》·《금사》·《원사》를 철저하게 추가하여 새로이 편집하였다. 그들은 《속자치통감》을 편집하면서 이 책을 이도(李燾)의 《속자치통감장편(續資治通鑑長編)》을 비롯하여 모두 110여 종의 참고서를 가지고 확실하게 고증하였다. 즉 기존에 있었던 한족(漢族) 중심의 역사 서술을 비판한 것이다. 더욱이 이 시기에 학자들에게 《사고전서(四庫全書)》가 공개되어 학자들은 마음껏 사실을 찾아 갈 수 있는 길이 열렸으므로 학문의 전성기를 구가할 수 있었다.
그리하여 이들은 역사는 ‘사실 그대로’를 쓰면 그 속에서 진리는 그대로 나온다는 신념을 가지게 되었다. 즉, 진리란 성인의 한 마디에 의할 것이 아니라, 사실 그대로를 알기만 하면 그 속에서 진리가 나온다는 것이었다. 특히 장학성은 역사가가 자기의 생각으로 역사책을 쓴다면 ‘그것은 뱀의 배에 다리를 그리는 것과 같다’고 생각하고, ‘사실에 근거하여 곧바로 쓰면 선악은 스스로 나타난다고 생각한다’고 말하였다.
이는 서양 근대 역사학의 대부(代父)라 할 레오폴트 폰 랑케(Leopold von Ranke, 1795~1886)가 ‘사실로 말하게 하라’라고 한 것과 완전히 같은 내용이다. 오늘날 우리 사학계에서는 19세기의 독일 사학자 랑케의 이 말은 금과옥조(金科玉條)로 꼽으면서 그보다 100년 앞선 장학성의 ‘사실이 바로 선악을 드러낸다’라는 말을 간과하는 경우가 허다한데, 이 책에서 장학성을 비롯한 청대 고증학자들의 철저하고 객관적 역사 서술을 만날 수 있다.
이렇게 근대 역사학 정신이 철두철미한 고증학자들, 특히 장학성이 참여하여 《속자치통감》을 편찬하였다는 것은 한족 중심의 역사학을 탈피하여 과장하지도 않고 축소하지도 않는 커다란 시각(視角)의 동아시아 역사가 탄생할 수 있었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러한 점에서 이 책은 객관적 역사학의 백미이고, 이보다 더 이상 객관적인 역사를 찾기 어렵다고 할 것이다.
특히 이 책이 쓰인 청나라 시대는 만주족이 지배하였던 시기인 만큼 역사를 구태여 한족 중심으로 써야할 이유가 없다는 시대적 배경을 가지고 있었다. 그렇기 때문에 외부의 압력 특히 한족 중심적 역사관에서부터 자유로울 수 있었던 몇 번 안 되는 시대였다는 것도 이 역사책의 객관성을 담보하고 있다. 그러한 점에서 한족이 강력하게 영향력을 발휘하던 시절에 쓰인 역사책과는 확연하게 다르게 객관적 역사로 믿을 만한 이 책이 탄생한 것이다.

3. 동북공정에 대응할 최적의 서적
우리는 최근 10여 년간 역사 문제에서 중국에서 추진하는 이른 바 동북공정을 통하여 고구려사를 중국사에 편입하려는 시도에 대하여 분개하고 있다. 그리고 고구려사가 우리 역사라고 열을 올리며 주장하고 있다. 그러나 감정적·정치적 대응 이외에 사실상 그에 대한 대응논리는 많이 부족한 것이 현실이다.
중국에서는 고구려 왕조를 중국의 지방정권이라고 하는데, 우리는 고구려를 우리 역사에 포함시켜야 한다는 논리를 개발하고 있지만 그 빈약함을 면치 못하고 있다. 다시 말하면 고구려를 형성하는데 대다수를 점하였던 종족의 후예라 할 거란족이나 여진족을 우리는 꾸준히 배척하면서 우리와 상관없는 종족으로 치부하여 왔기 때문이다. 또한 지배영역에서도 고구려가 차지하였던 지역을 우리 역사 안으로 끌어들이지 못한 기간이 이미 1300여 년이 흘렀고, 그에 대한 연구도 아주 일천한 상황에서 중국의 논리에 반박하는 데 한계가 있다.
현재 중국은 한족을 중심으로 하면서 그 이외의 종족을 다 수용하는 태도를 가지고 고구려 후예라 할 거란족이나 여진족, 만주족을 자기들 중국민족 속에 포함시키고 있다. 그런데 우리는 고구려 후예의 대다수인 거란·여진족을 배척하면서 고구려사를 우리의 역사라고 주장하고 있으니 스스로 한계를 갖고 있는 것이다. 중국의 이른바 동북공정이라는 것은 정치 논리이지 역사학 논리가 아닌 것을 분명하지만, 우리는 그들의 논리를 격파하지 못하고 있다.
그런데 《속자치통감》은 10세기부터 400여 년간의 동아시아 역사는 한족이 중심이 아니라 북방민족이 주류를 이루고 있었던 시대였음이 웅변으로 말하고 있으며, 이를 통하여 아시아 역사에서 한족이 차지하는 비중은 그다지 크지 않다는 것을 알게 된다. 이 논리는 명대(明代)를 거쳐 만주족 왕조인 청 왕조가 동아시아를 지배하였다는 점에서 본다면 중국민족의 대표라고 할 한족의 활동은 그다지 크지 않았음이 밝혀지는 것이다.
그러한 점에서 누구라도 인정하는 이 《속자치통감》이라는 명저(名著)를 가지고 역사의 진실을 살펴본다면 동아시아의 역사는 북방족이 중심이 되었다는 것이 분명하다. 또한, 아시아는 한족의 역사가 아니라 아시아 모두의 역사라는 사실이 증명되기 때문에 한족 중심 이론에 바탕을 두고 진행하는 동북공정의 논리를 적절하게 대응하는 데 큰 도움이 될 수 있다. 현실적으로 우리나라에 이 《속자치통감》의 역주는 그만큼 중요하다고 하겠다.

4. 편년체 사서의 단점을 보완한 역주
역사책을 쓰는 방법은 몇 가지가 있겠지만 중요한 것은 기전체(紀傳體)와 편년체(編年體)이다.
보통 《25사(史)》라고 말하는 것은 모두 기전체로 되어 있다. 기전체란 제기(帝紀), 즉 황제의 기록과 열전(列傳), 즉 유명한 인물(人物)의 전기이기 때문에 인물 중심의 역사서이다. 따라서 황제들의 일대기와 유명한 인물들의 일대기를 모아 묶은 것이 기전체라 할 수 있다.
그런데 한 가지 일을 진행하기 위하여 여러 사람이 참여하게 되고 기전체로 역사를 적다보면, 그 인물들의 전기를 쓸 적마다 그 사건을 쓰지 않을 수 없는 문제가 생긴다. 그러면 같은 내용이 중복되게 되고 분량은 많아진다. 그러기 때문에 한 사건 혹은 한 시기에 일어난 일을 알기 위해서는 아주 여러 사람의 전기를 읽어야 하는 번거로움이 있다.
이러한 기전체의 약점을 보완하기 위하여 탄생한 것이 편년체 역사서이다. 이것은 시간을 중심으로 사건을 배열하기 때문에 사건이 중복될 필요가 없고, 어떤 사건에 참여한 인물과 그 역할을 종합적이고 유기적으로 파악하는데 아주 편리하다.
그러기 때문에 북송시기에 사마광에 의하여 편년체 역사서 《자치통감》이 탄생하였다. 그만큼 역사학 서술방법이 발전한 것이었고, 그 때문에 후속하여 많은 편년체 역사서가 출현하게 된 것이다. 그러나 여기에도 읽는 사람에게 불편함이 따르는데, 처음도 끝도 없는 것이 시간이기 때문이다. 사건이나 인물의 시작과 끝을 손쉽게 이해하려면 역사책을 처음부터 끝까지 다 읽어야 하는 불편함을 느끼고 있다.
그래서 편년체 역사서의 편자(編者)들은 별도로 목록을 만들었다. 그 목록은 대체로 이 부분은 ‘어느 시기부터 어느 시기까지이다.’라는 것을 밝혀 둔 것이다. 그러나 이것만으로는 특정 사건을 이해하는 데 불편하므로 다시 기사본말체(紀事本末體)가 나타나서 사건 중심으로 역사를 기록하는 방법이 나타났다. 그러한 점에서 기사본말체는 편년체의 문제를 해결한 것 같지만 여기에도 다시 기전체의 문제점을 다시 갖게 되었다.
결국,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편년체와 기사본말체를 적절하게 종합하여 사용하는 방법을 고안해야 했다. 그래서 이번 《속자치통감》 역주는 편년체로 된 기록을 기본으로 하되 기사본말체에서 사건중심의 기록이라는 요소를 가져다가 사건의 내용을 제목으로 끌어내어 편년체를 보완하였다. 이 점은 이미 완간된 《자치통감》 역주에서 보여 준 바이다.
그리하여 이 책을 읽는 사람으로 하여금 시간의 흐름과 그 시간 속에 펼쳐진 사건의 순서를 이해하기 쉽게 한 것이다. 그러한 점에서 이 《속자치통감》의 역주는 단순한 번역이 아니라 새로운 역사체계의 창안이라고까지 할 수 있다. 그러므로 독자에게는 관심 있는 시대와 알고 싶은 사건을 목록을 통하여 쉽게 접근할 수 있게 되었다는 점이 가장 큰 장점이고 원서(原書)를 뛰어넘는 번역의 모색이라고 할 수 있다.

전체 리뷰 (0)
최근 작성 순
예스이십사 ㈜
사업자 정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