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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Book] 항전척독 - 지식을만드는지식 수필비평선집
글쓴이
홍대용 저
출판사
지식을만드는지식
출판일
2018년 7월 20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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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이미지

홍대용

북학파의 선구자 혹은 과학사상가로서 ‘지구가 자전한다’는 지전설을 주창한 홍대용은 1731년(영조 7) 충청도 천안군 수신면 장산리 수촌에서 태어났다. 마음만 먹으면 출세를 보장받는 가문 출신이지만, 순수한 학문의 길을 선택하여 과거시험은 크게 신경 쓰지 않았다. 12세에 석실서원에 들어가 23년간 기호학파의 대표적인 유학자 김원행 아래에서 수학하였으며, 천문학·수학·역산학·음악 등 다양한 분야에 걸쳐 관심을 가졌다.

홍대용의 일생에서 가장 전환점이 된 사건은 중국 연행이다. 1765년 홍대용은 서른다섯의 나이로 중국 땅을 밟기 위해 압록강을 건넜다. 이때 북경 유리창에서 만난 항주의 선비 엄성과 반정균, 육비와 시공을 초월한 우정을 나누면서, 그리고 천주당과 관상대를 방문하여 서양의 문물을 접하면서 홍대용은 서서히 새로운 세계관을 가진 인물로 탈바꿈되어갔다. 불멸의 명저 『의산문답』은 중국 연행을 다녀 온 후 쓴 책이다. 40대에 들어서 음직으로 관직에 나갔고 정조 임금이 왕위에 오르기 전 17개월 동안 세자익위사에서 근무하면서 그 경험을 바탕으로 『계방일기』라는 글을 남겼다.

어머니의 병을 구실로 고향에 돌아와 있던 홍대용은 1783년 10월 23일에 생애를 마감했다. 꼭 52년하고도 7개월 남짓의 길지 않은 일생이었다. 그의 본관은 남양南陽, 호는 홍지弘之라 했고, 자는 덕보德保, 당호로는 담헌湛軒을 썼기 때문에 오늘날 그의 문집은 『담헌서湛軒書』란 이름으로 남아 있다.

책 소개

분야고전
담헌 홍대용은 35세(1765) 때 동지사 서장관의 신분으로 사신 가는 숙부 홍억(洪檍)을 수행해 떠난 60일의 연경 생활에서 평생을 그리워하며 존경했던 중국 지식인들을 만나게 된다. 이는 우연한 조우가 아닌 길을 나서기 전부터 품고 있던 바람의 결과였던 것이다.
1766년 1월 26일, 비장(裨將) 이기성(李基成)이 연경의 유리창 거리에 안경을 구입하러 갔다가 우연히 엄성과 반정균을 만난다. 며칠 뒤 2월 1일 아침, 이기성이 엄성의 숙소로 사람을 보내 말을 전했고, 이 소식을 들은 담헌이 이틀 후 2월 3일, 김재행(金在行)과 함께 이기성을 앞세워 건정동으로 두 사람을 찾아갔다. 당시 엄성은 35세, 반정균은 25세, 담헌은 36세, 김재행은 49세였다.
2월 17일, 담헌은 중국의 과거 제도에 관해 대화를 주고받고, 그들의 주선으로 2월 23일, 그 전날 연경으로 올라 온 48세의 육비와 만났다. 1766년 2월 한 달 동안 나이도 엇비슷한 담헌과 엄성은 연경에서 일곱 차례를 만나며 교분을 나눈다.
또한 김재행, 엄성, 육비, 반정균은 서로 의형제를 맺고, 3월에 헤어지면서 담헌은 “한번 헤어지면 다시는 만나지 못할 것이다. 죽어 지하에서 만나더라도 부끄러운 일은 하지 말자!”고 했고, 엄성은 “바다가 마르고 바위가 다 닳아도 오늘을 잊지 말자!”고 했다. 그다지 길지 않은 만남이었지만 두 사람이 서로 마음을 주고받았던 간절함은 모두 <항전척독>에 자세히 기록되어 있다.
조선 시대에는 누구나 예상하듯이 이역만리 떨어진 외국의 벗과 사귄다는 것은 매우 어려운 일이었다. 한 나라 안에서도 편지가 중간에서 누락되어 전해지지 않는 것은 흔한 일이었고 전해진다고 하더라도 전팽(專?), 위팽(委?) 등의 경우를 제외하고는 즉시 전달되는 일은 거의 드물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담헌은 중국의 벗에게 다양한 주제로 갖가지 크고 작은 궁금증을 허심탄회하게 묻고 또 물었다. 그리 오랜 시간이 필요치 않은 오늘날의 편지 전달과는 달리, 상상하기조차 힘든 많은 시간이 필요했지만 국경을 뛰어넘는 학문에 대한 깊이와 간절한 우정은 오늘날의 어떤 편지와도 비교하기 어렵다.
2016년 숭실대학교 한국기독교 박물관에서 담헌이 받은 중국 선비들의 편지 모음집인 ≪중사기홍대용수찰첩(中士寄洪大容手札帖)≫이 간행되었다. <항전척독>은 담헌이 중국의 벗들에게 보낸 편지만 실려 있어 앞서의 수찰첩과 함께 안팎으로 짝을 이루어 일람한다면, 18세기 조선 지식인과 중국 지식인의 교유를 짜임새 있게 확인할 수 있는 기회가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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