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처 입은 청년, 분열된 얼굴의 낯선 선명함
문지클래식 3은 이인성의 연작장편소설 『낯선 시간 속으로』이다. 이 소설은 방황하는 청년의 의식을 분열적이면서도 중첩적인 문체로 아주 세밀하게 그려내며 한국 현대소설사에 사건 그 자체가 된 문제작이다. 정치가 예술을 압도하던 시절의 한복판인 1983년에 출현한 이 신진 작가의 첫 장편연작 초판본 해설에서 문학평론가 김현은 “한국 문학은, 이제, 그를 통해, 1974년에 23살 혹은 24살에 이르른 한 상처받은 젊은이의 전형적 모습을 갖게 되었다”라고 평하기도 하였다.
이 연작을 이루는 네 편의 중편소설은 1979년부터 1982년까지 각각 발표되었으나, 책으로 묶이면서 소설의 배경이 되는 시간의 선후에 따라 다시 배열되었다. 각 작품이 독립성과 완결성을 유지하면서도 인물이나 사건, 상황과 대사가 어색함 없이 꼭 들어맞는다. 1974년 네 계절에 걸쳐 한 청년의 의식이 변모해가는 과정을 섬세하고 복잡하게 다루고 있는 이 연작의 주요 서사는 이렇다.
반독재 시위에 참가했다가 강제 징집을 당했던 청년은 1973년 겨울 부친의 죽음으로 의가사제대를 하게 된다. 귀경길에서도, 아버지의 무덤을 찾아가는 여정 중에도 끊임없이 방황하며 헤매기를 반복하는 그는 자신이 아버지를 죽였다는 죄책감에 깊게 시달린다. 대학 생활 동안 활동해온 극단 동료에게 군 복무 중 실연당하고, 이른 제대로 인해 복학에마저 실패한 그는 강박적으로 어딘가로 돌아가고자 하지만 정작 가야 할 곳이 어딘지조차 알지 못한다. 그해 가을 그는 본인이 쓴 연극을 관람하며 이 연극의 상연 과정과 그것을 관람하는 자신의 분열적 의식을 감각한다. 그리고 겨울, 미구시로 여행을 가 자살을 시도하려 하지만, 분열된 자아들이 대립하고 교차하는 과정을 통해 새로운 활력을 얻고 서울로 되돌아오려 한다.
이러한 이야기의 흐름만으로 간단히 파악되지 않는 이 소설에 대해 그간 다양한 분석이 시도되었으나 이번 책의 해설을 쓴 문학평론가 김형중은 이 책이 리얼리즘의 정점을 겨냥하고 있다는 입장에 힘을 싣는다. 프랑스어로 『낯선 시간 속으로』를 번역하여 대산문학상 번역 부문을 수상하기도 한 장 벨맹-노엘 또한 이인성의 소설 전략이 극사실주의에 있음을 지적하였는데, 정말 ‘리얼’한 세계는 간단한 평면이 아닌 아주 복잡한 분열과 중첩으로 이루어져 있음을 작가가 일찍이 간파했다고 보았기 때문이다. “이인성은 말과 이야기가 어떤 방식으로 실재를 가리는지, 재현의 주체는 어떻게 분열되어 있는지를 악의적으로 재현한다. 말하자면 재현의 불가능성, 그 막연함을 재현함으로써 실재에 훨씬 근접한다”(문학평론가 김형중).
한편 많은 독자들에게 난해하다는 불만을 사기도 했던 이 소설은, 오히려 이 문학적 실험을 통해 우리가 문학에 대해 가지고 있는 관습적인 이해 지평에 대한 반성을 요구했다고도 볼 수 있겠다. “난해하다는 표지는 문학 내부에 자리하고 있는 가장 문학적인 타자에게 부여될 수 있는 명패와도 같은 것”(문학평론가 김동식)이었다는 점에서, 여전히 현대의 독자들에게 유효한 질문을 던지는 작가가 바로 이인성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