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세 잉글랜드의 보통법(Common Law)에 따르면, 범죄는 ‘국왕의 평화’를 깨트리고 사회질서를 어지럽힌 행위이다. 그러므로 ‘국왕의 평화’를 깨트린 범법자들을 국왕의 이름으로 처벌하였다. 그렇다면 ‘국왕의 평화’를 깨트린 범법행위가 어떤 경우에 많이 발생하였는가? 중세 잉글랜드의 범죄에 대하여 연구한 법학자들, 사회학자들, 역사학자들에 따르면, 안정된 사회에서 보다는 크나큰 사회적 변동을 일으킬 만한 역사적 사건이 발생한 때에 범법행위도 증가한다고 주장한다. 이러한 주장을 확인하기 위한 수단으로 필자는 13-14세기 잉글랜드에서 발생한 사회변화를 일으킬 정도로 큰 충격을 준 여덟 가지 사건을 선정하여 그 특징을 살펴보고, 이 사건들이 발생한 시기에 범죄에 대한 일반적 모습을 검토하였다. 13-14세기에 런던과 같은 대도시는 물론 요크에 위치한 웨이크필드 장원을 비롯한 여러 지역에서 실행된 범법자들에 대한 법원의 재판 결과를 확인한 결과, 필자는 사회 변동을 일으킬 만한 큰 사건이 발생하면 반드시 범죄도 그에 비례하여 증가한다는 일반론이 최소한 13-14세기 잉글랜드에는 적용될 수 없음을 확인하였다. 이러한 문제를 조사하기 위한 전제로 필자는 중세 잉글랜드에서 발생한 중죄와 불법침해죄의 범주와 그 특징, 그리고 중죄인들을 비롯한 불법침해자에 대한 처벌의 형태, 그리고 그들을 처벌하기 위한 근거인 보통법과 법원의 활동에 대하여 먼저 검토하였다.
필자는 본 저서 편찬의 또 다른 목적을 13-14세기 잉글랜드의 국왕, 성속 지배층, 평민들의 준법정신에 대하여서도 검토하고자 하는데 두었다. 법의 집행은 정의롭고 공정해야 한다. 이것이 법치주의의 기본 정신이다. 그러나 중세 잉글랜드의 국왕을 비롯한 지배층은 법을 자신의 통치 목적에 적극적으로 이용하였다. 예컨대 보통법에 따라서 교수형에 처하여야 할 중죄인들을 국왕의 전쟁에서 군역을 납부한다는 조건으로 사면하기도 하고, 성직자들은 중죄를 범하여도 세속법으로 처벌하지 못하였다. 이러한 가운데 법치주의가 확립되고 왕국의 평화를 기대할 수는 없었다. 이러한 상황에서 평민들의 법에 대한 시각과 범법행위에 대하여 어떻게 생각하였는가를 검토하는 것도 흥미로운 문제이다. 또한 범죄에 대처하기 위하여 발전시킨 법원의 형태와 그 기능은 물론 재판제도의 변화와 발전이 정치와 사회에 어떤 영향을 끼쳤는가 하는 문제도 검토하였다. 이러한 과정에서 필자는 법의 적극적인 지원을 받은 잉글랜드 왕권이 유럽의 다른 국가들에 비하여 발달하였음도 확인하였다. 이는 당시 잉글랜드에는 일반론적인 ‘봉건제’는 존재하지 않았다는 점을 확인하는 수단이 되기도 하였다. 즉 법의 발전과 법원의 형태 변화를 통하여 왕권 강화를 확인할 수 있었다. 이는 새로운 시각에서 ‘의사봉건제’를 이해하는 수단이 될 것이다.
현재까지 우리나라 역사학자는 물론 법학자나 사회학자들이 연구한 사회변화와 범죄가 서로 어떤 상관관계가 있는지에 관한 본격적인 연구는 없는 실정이다. 법학자들이 이에 관심을 기우리지 않는 것은 아마도 법의 실용성에 치우친 연구와 학계의 풍토, 그리고 그에 따른 법제사에 관한 관심 부족 때문일 것이다. 그런 점에서 본 연구서는 앞으로 역사학뿐만 아니라 법학이나 사회학 분야에서 사회변화와 범죄와의 상관성을 찾는 연구를 위한 하나의 밑바탕이 될 것으로 필자는 기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