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젊은 베르테르의 슬픔
글쓴이
요한 볼프강 폰 괴테 저
출판사
단한권의책
출판일
2018년 10월 1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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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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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한 볼프강 폰 괴테

고전파의 대표자이자 독일의 시인이자 극작가. 독일 고전주의를 대표하는 인물로, 1749년 8월 28일 마인 강변의 프랑크푸르트에서 부유한 집안의 장남으로 태어났다. 법학을 공부한 황실 고문관이었던 아버지 요한 카스파르 괴테와 프랑크푸르트 시장의 딸이었던 어머니 카타리나 엘리자베트 사이에서 부족할 것 없는 교육을 받고 자랐다. 라틴어 등 어학에 뛰어났으며 독서량도 많았다. 어렸을 때 라틴어와 그리스어, 불어와 이탈리아어 그리고 영어와 히브리어를 배웠고, 미술과 종교 수업뿐만 아니라 피아노와 첼로 그리고 승마와 사교춤도 배웠다. 괴테는 아버지의 서재에서 2000권에 달하는 법률 서적을 비롯한 각종 문학 서적을 거의 다 읽었다고 한다.

괴테는 아버지의 바람에 따라 1765년부터 1768년까지 당시 “작은 파리”라고 부르던 유행의 도시 라이프치히에서 법학 공부를 시작했다. 그러나 전공인 법학 강의보다 문학 강의를 더 열심히 들었다. 1770년 독일 질풍노도 운동의 실질적 선도자인 고트프리트 헤르더를 만나 독일 민속과 정신에 대한 깨우침을 얻었다. 슈트라스부르크에서 법학 공부를 마친 후 아버지의 도움을 받아 프랑크푸르트에서 작은 변호사 사무실을 열었지만, 문학에 대한 열정에 더 사로잡혀 있었다.

이때 쓴 작품은 ‘질풍노도’ 시대를 여는 작품으로 『괴츠 폰 베를리힝겐』과 『초고 파우스트』와 같은 드라마와, 문학의 전통적인 규범을 뛰어넘는 찬가들을 쓰게 된다. ‘질풍노도’ 시대를 여는 작품인 『괴츠 폰 베를리힝겐』이 1773년 발표되자 독일에서는 뜨거운 논쟁이 벌어졌는데, 독일에서 드라마의 전통적인 규범으로 여기고 있던 프랑스 고전주의 극을 따르지 않고 최초로 영국의 셰익스피어 극을 모방했기 때문이었다. 프로이센의 왕까지 가세한 이 논쟁으로 인해 괴테는 독일에서 일약 유명세를 타게 되었다.

1768년 건강상의 이유로 요양 생활을 했는데, 그 무렵 신비주의와 중세의 연금술에 관심을 갖게 되었다. 1770년 스트라스부르에서 법학 공부를 위해 머물다가 헤르더를 알게 되면서 셰익스피어 문학에도 심취했다. 변호사가 된 그는 1772년 제국 고등법원의 실습생으로서 몇 달 동안 베츨러에 머물렀다. 이때 이미 약혼자가 있는 샤를로테 부프를 사랑하게 되는 아픔을 겪고, 그 경험을 바탕으로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1744)을 써, 문단에 이름을 떨쳤다.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은 이때의 경험에서 나온 것으로, 주인공 베르테르의 옷차림이 유행하고 모방 자살까지 일어나는 등 유럽 전역에서 폭발적인 인기를 끌었다.

1774년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이 발표되자 괴테는 일약 유럽에서 유명 작가가 되었다. 전국에서 수많은 사람들이 이 젊은 작가를 만나기 위해 프랑크푸르트로 몰려들었다. '슈투름 운트 드랑'(질풍노도시대, 문예의 혁명 운동)의 대표작으로서 전 독일 뿐만 아니라 전 유럽에 알려졌다. 1775년 제2의 고향이 되는 바이마르로 가서 공작의 고문이 되고 1782년에는 귀족 반열에 들었다. 1786년의 이탈리아 여행은 괴테의 생애에서 중요한 전환점이 되었는데, 이 여행을 통해 그는 고전주의를 지향하게 되었다. 1794년부터 실러가 기획한 잡지에 협력하여 우정을 맺은 괴테는 이후 실러의 격려와 이해에 용기를 얻어 많은 작품을 완성했다. 오랫동안 중단되었던 『파우스트』에 다시 손을 댄 것도 이 시점이다.

자신의 장래에 대해 어떤 결정도 내리지 못하고 망설이던 괴테를 18세에 불과했던 바이마르(Weimar)의 카를 아우구스트(Karl August, 1757∼1828) 공작이 초청했다. 처음에는 잠시 체류하면서 자신의 미래에 대해 생각해 보고 아버지의 권유대로 이탈리아로 여행을 다녀올 예정이었다. 그러나 괴테는 이미 유럽에 널리 알려진 유명 작가로 그곳에서 극진한 환대를 받았고, 빌란트(Wieland)를 비롯해 많은 예술가들이 모여 있는 바이마르의 예술적 분위기와 첫눈에 반해 버린 슈타인 부인의 영향으로 그곳에 머무르게 된다. 괴테에 대한 공작의 신임은 두터웠고 공국의 많은 일들을 그에게 떠맡기게 되었다.

여러 해에 걸친 국정 수행으로 인한 피로와 중압감으로 심신이 지친 괴테는 작가로서의 침체기를 극복하기 위해 바이마르 궁정을 벗어나 이탈리아로 여행을 감행했다. 1년 9개월 동안 이탈리아에 체류하면서 괴테가 느꼈던 고대 예술에 대한 감동은 대단한 것이었다. 이탈리아 여행을 통해 얻게 된 고대 미술의 조화와 균형, 그리고 절도와 절제의 정신을 자기 문학을 조절하는 규범으로 삼아 자신의 고전주의(Klassik)를 열 수 있었던 것이다.

독일 문학사에서는 괴테가 이탈리아에서 돌아온 1788년부터 실러가 죽은 1805년까지를 독일 문학의 최고 전성기인 “고전주의” 시대라고 부른다. 이 시기에 괴테와 실러는 바이마르를 중심으로 자신들의 고전주의 이상을 실현하는 활동을 했는데, 개인의 “개성”을 존중하면서도 “유형(類型)”을 통해 “유형적인 개성”으로 고양(高揚)되는 과정을 추구했던 것이다. 괴테와 실러의 상이한 창작 방식은 상대의 부족한 면을 보충해 주어 결과적으로 위대한 성과를 올릴 수 있게 해 주었다. 실러의 격려와 자극으로 괴테는 소설『빌헬름 마이스터의 수업 시대』를 1796년에 완성하고, 프랑스 혁명을 피해 떠나온 피난민들을 소재로 한『헤르만과 도로테아』를 1797년에 발표해 대성공을 거두었으며, 미완성 상태의 『파우스트』작업도 계속 진행해 1808년에 드디어 1부를 완성하게 된다.

실러는 지나친 의욕과 격무로 인해 1805년 5월 46세의 나이로 쓰러지는데, 실러의 죽음은 괴테에게도 커다란 충격이었다. 1815년 나폴레옹이 권좌에서 물러나자 바이마르 공국은 영토가 크게 확장되어 대공국이 되었다. 괴테는 수상의 자리에 앉게 되지만 여전히 문화와 예술 분야만을 관장했다. 1823년『마리엔바트의 비가』를 쓴 이후로 괴테는 대외 활동을 자제하고 저술과 자연연구에 몰두해 대작 『빌헬름 마이스터의 편력 시대』(1829)와『파우스트 2부』(1831)를 집필하게 된다. 서사시와 서정시, 산문과 시극, 비평과 수기, 4편의 소설과 1만여 통의 편지를 남긴 괴테는 독일민족이라는 정체성의 태동기에 독일문화와 독일어에 막대한 영향을 끼쳤다.

1832년 3월 22일 낮 1시 반, 괴테는 심장 발작으로 사망한다. 그는 죽을 때 “더 많은 빛을(Mehr Licht)” 하고 말했다고 전한다. 그리고 3월 26일 바이마르의 카를 아우구스트 공작이 누워 있는 왕릉에 나란히 안치되었다.

책 소개

분야소설/시/희곡
영혼을 울리는 사랑의 문장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 블랙 에디션 출간
동서고금을 초월한 명작을 한층 깊이 있게 이해할 수 있도록 구성,
소장 가치 업그레이드


과거나 지금이나 청춘이라면 누구나 한 번쯤은 사랑의 열병을 앓는다. 이 작품을 읽어 보면 사랑의 아픔이라는 감정이 혼자만 겪는 것이 아니고 누구나 겪는 것이지만, 지극히 개인적이고 특별한 감정임을 알게 될 것이다. 내가 베르테르일 수 없고, 샤를로테일 수는 없지만, 내 사랑이 그 누구의 사랑보다도 특별하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는 기회가 될 것이다.

‘사랑의 열병’을 이보다 더 잘 표현한 작품은 없다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은 괴테가 스물다섯 살 때 쓴 첫 소설이다. 법학도인 젊은이 베르테르는 약혼자가 있는 로테라는 아름다운 여인을 사랑한다. 그러나 그의 사랑은 거절당하고, 그토록 사랑하는 그녀가 정작 다른 사람을 사랑한다는 사실에 좌절하고 고통스러워하다가 결국 자살에 이른다는 비극적인 내용이다.
이 작품은 출간되자마자 당시 독일뿐만 아니라 유럽 사회 전체에 큰 반향을 불러왔다. 이 작품이 그토록 선풍적이었던 것은 단순한 연애소설이 아니라 이성과 합리성을 중시하던 당시의 통념을 깨고 인간 본연의 감정에 충실하여 사회적 제약으로부터의 해방을 외쳤기 때문이다.
그 후 오늘날에 이르기까지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은 전 세계 수많은 사람의 심금을 울리며 명작의 반열에 올라서 있다. 이 작품에서 비롯된 ‘베르테르 효과’ (유명인이나 자신이 모델로 삼고 있던 사람 등이 자살할 경우, 그 사람과 자신을 동일시해서 자살을 시도하는 이런 현상을 미국의 사회학자 데이비드 필립스는 ‘베르테르 효과’라고 이름 붙였다.) 라는 용어만 봐도 이 작품이 얼마나 보편적인 인간의 감성에 충실한지 알 수 있다.

이 작품의 문학적 표현에서 두드러지는 점은 계절의 변화에 인간의 감정 변화를 대입시켜서 사랑에 빠진 젊은이의 내면을 더욱 극적으로 드러냈다는 것이다. 봄에는 사랑의 시작이, 여름에는 사랑의 강렬함이, 겨울에는 상실감이 표현되었는데, 이러한 계절 변화가 사랑에서 비롯된 내면적·감정적 변화를 자연스럽게 표현하는 장치가 되었다.
한 가지 더 주목할 만한 것은 편지글 형식으로 이야기를 전개했다는 점이다. 이런 방식을 택한 것은 독자들을 고백의 대상으로 끌어들여 인간 내면을 여과 없이 전달하고, 작품에 대한 몰입도를 더욱 높이기 위해서였을 것이다. “나는 체험하지 않은 것은 한 줄도 쓰지 않았다. 그러나 단 한 줄의 문장도 체험한 것 그대로 쓰지는 않았다.”고 말한 바 있듯, 허구와 현실을 넘나들면서 괴테 자신의 자전적 이야기를 바탕으로 했다는 점 또한 이 작품의 흡입력을 드높이고 있다.
과거나 지금이나 청춘이라면 누구나 한 번쯤 일생 동안 잊지 못할 사랑의 열병을 앓는다. 사랑의 아픔은 혼자만 겪는 것이 아니고 누구나 겪는 보편적인 것이다. 그러나 이 작품을 읽다 보면 사랑은 지극히 개인적이고 특별한 감정이며, 온 우주가 통째로 흔들리는 일임을 알게 될 것이다. 내가 베르테르일 수 없고 샤를로테일 수는 없지만, 내 사랑이 그 누구의 사랑보다도 특별함을 확인할 수 있는 기회가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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