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군주제는 언제라도 사회적 기반에 의존하지 않으면 존립할 수 없다. 따라서 사회에 적응해 모습과 입장을 바꿔 가면서 나라와 국민을 통합해야 한다. 결국 군주제는 본질적으로 상상력의 제도다.” ― 버넌 보그다너(영국의 정치학자)
포털 사이트 검색창에 영국 왕족의 이름을 입력하면 패션, 결혼식, 그가 사용하는 제품 상표 등이 연관 검색어로 줄줄이 뜬다. 한때 ‘해가 지지 않는’ 대영제국의 절대 군주로 세계 위에 군림하던 영국 왕실이 오늘날에는 세계인의 관심 속에 유행을 선도하는 대중 스타가 된 듯하다. 그렇다고 해서 영국 왕의 정치적 영향력이 사라진 것은 아니다. 엘리자베스 2세가 브렉시트에 찬성하는 발언을 했는지, 여왕이 옷깃에 단 브로치에 트럼프 미국 대통령을 향한 경고의 메시지가 담겨 있는지에 영국 국민은 물론 전 세계 이목이 집중되고 국내외 정치가 들썩인다. 영국 사회에서 왕권은 의회에 밀려 사라져 버린 것이 아니라 오히려 사회 문화 전반으로 이전 내지 확장된 것으로 보인다.
이렇듯 영국은 근대 민주주의가 꽃핀 본고장이면서 현존하는 왕과 왕실이 상당한 영향력을 발휘하는 독특한 나라다. 공화정도 절대왕정도 결국 실패한 영국에서는 온 국민이 왕관 아래 결속하는 한편으로 왕이 소집한 의회가 왕을 내치기도 했다. 고대부터 대륙 이곳저곳에서 건너온 여러 민족 간에 피비린내 나는 싸움이 벌어졌고, 이는 왕좌 전쟁으로 줄곧 이어져 왔다. 새롭게 왕좌를 꿰찬 인물은 자신과 가문의 정통성을 입증하기 위해 민중을 하나로 묶고 충성하게끔 만드는 다양한 문화를 양성했다. 정복왕 윌리엄 1세, 해적왕 엘리자베스 1세, 악마학자 제임스 1세, 농부왕 조지 3세 등 개성 넘치는 영국 왕들은 의회와 더불어 고유한 정치제도를 확립시켰다. 봉건적 군주에서 전제군주를 거쳐 사회적 군주이자 정서적 지도자로, 시대의 흐름에 따라 매번 새로운 역할을 담당해 온 역동적인 왕의 역사를 통해 영국 사회와 영국인의 심층을 들여다본다.
『왕으로 만나는 위풍당당 영국 역사』는 『파스타로 맛보는 후룩후룩 이탈리아 역사』와 『과자로 맛보는 와삭바삭 프랑스 역사』에 이어 유럽 역사를 주도해 온 나라들의 역사, 문화, 사회, 국민 전반을 그 나라를 대표하는 소재로써 풀어 나가는 이케가미 슌이치의 친절하고 명쾌한 유럽사 시리즈의 새 타래다. 오늘날까지 굳건하게 이어진 영국 왕실의 숨은 역사와 흥미진진한 영국인 이야기를 만나 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