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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민과 정부간 무기의 평등 : 아렌트, 샌델, 유시민을 넘어
글쓴이
최자영 저
출판사
헤로도토스
출판일
2018년 10월 20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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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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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자영

최자영(崔滋英)은 경북대학교 문리과대 사학과를 졸업(1976)하고 같은 대학교에서 석사학위(1979)를 받고 박사과정을 수료(1986)하였다. 그리스 국가장학생(1987.4-1991.4)으로 이와니나 대학교 인문대학 역사고고학과에서 「고대 아테네 아레오파고스 의회」로 역사고고학 박사학위(1991.6)를 받았고, 다시 이와니나 대학교 의학대학 보건학부에서 의학박사학위(2016.7)를 취득했다.

부산외국어대학교 교수로 재직했고(2010-2017), <한국서양고대역사문화학회>의 학회장(2016-2017)을 역임했으며, 현재 ATINER (Athenian Institute for Educa tion and Research: 아테네 소재 연구소)의 역사부 부장, 부미사<부산의미래를준비하는사람들> 공동대표, 10.16부마항쟁연구소 소장으로 있다.
저서로 『고대 아테네 정치제도사』(신서원, 1995)[문화체육관광부 역사부문 우수도서];『고대 그리스 법제사』(아카넷, 2007 [대우학술총서 588 : 2008년 문화체육부 역사부문 우수도서]); Comparative Botano-therapeutics: Traditional Medi cinal Use in the Far-Eastern and Greece (Lambert Academic Publishing, 2017); 역서로는 『러시아 마지막 황제』(송원, 1995), 아리스토텔레스의 <아테네 국가제도> 등을 번역한 『고대 그리스 정치사 사료』[공역: 최자영, 최혜영](신서원, 2003), 이사이오스, 『변론』(안티쿠스, 2011), 크세노폰, 『헬레니카』(아카넷, 2012 [한국연구재단총서: 학술명저번역 509]), 그 외 그리스의 저명한 현대 문학가 안토니스 사마라키스의 작품을 번역한 『손톱자국』(그림글자, 2006) 등이 있다.

책 소개

분야사회 정치
이 책은 구석구석 성한 데가 없이 적폐가 만연한 한국사회를 진단하고, 그 민주정치를 논하는 데 있어 절차와 내용 간 대립개념을 제시한다. 내용은 상황, 시대, 시민의 요청에 따라서 가변적이다. 그러나 민중의 뜻을 모으는 방법으로서의 절차 민주주의는 결여할 수 없는 민주정치의 기초가 된다. 그런 점에서 내용보다 절차가 우선되어야 한다.

예를 들면, 경제적 사회복지정책은 내용에 해당한다. 그 내용에 대한 것은 서로 이견이 있을 수 있으며, 그 자체를 두고 논쟁을 하면 끝이 나지 않는다. 그러나 대의제 대신 민중이 결정권을 갖는다는 것은 절차에 해당한다. 결정하는 사람이 달라지면 그 내용도 달라지기 때문에 민중이 결정권을 가지는 제도를 먼저 도모하는 것이다. 지금같이 대의제 국회에서 결정권을 갖는다면 민중을 위한 복지정책은 실로 가결되기 어렵다. 국회의원들 다수가 가진 자들에 속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먼저 민중의 결정권을 확보한 다음 나머지는 민주적 방법으로 결정하면 된다. 민중의 결정권만 확보된다면 공산주의나 자본주의체제를 가지고 충돌할 필요도 없어진다. 그 중간 어디쯤인가에서 다수가 원하는 것으로 절충하면 되기 때문이다. 절차 민주정치가 정초되면 자본주의와 공산주의 혹은 사회주의의 이념 싸움을 할 필요가 없다.

민중이 정치에 참여한다는 것이 대의제보다 비용이 더 들고 번거로운 것이라고 생각하는 이가 있다. 그러나 비용 문제는 차치하고 민중의 직접 정치 참여는 불가피하다. 공무원 인력이 모자라 정부의 공무원 인력으로 다 감당할 수가 없기 때문이다. 재량권이란 공무원이 사적인 것보다 공익 관련 사안을 우선하여 처리하도록 판단하는 권한을 말한다. 공익의 순서에서 밀리는 사적인 것은 무시하고 정부가 국민을 일일이 다 보호하지 못해도 불법이 아닌 것이다. 더 심각한 것은 많은 국민이 ‘재량권’이 초래하는 어마어마한 공권력의 공백에 대해서 인식조차 하지 못하고 있다는 점이다.

촛불 시위가 남다른 것은 정치를 위정자들에게 맡겨두기만 할 것이 아니라 민중 스스로 하지 않으면 안 된다는 것을 깨치기 때문이다. 오늘 적폐가 만연한 한국사회가 겪는 홍역은 1987년 헌법이 갖는 비민주적인 독재의 잔재 때문이다. 특히 오늘날 회자되고 있는 사법적폐의 태풍의 눈에 해당하는 것이 바로 1987년 헌법이 낳은 헌법재판소이다.

1987년 독일의 제도를 본 따서 만든 헌법재판소는 하위법률인 헌법재판소법(68조 1항)을 통해서 재판소원을 애초에 금지했다. 이것이야 말로 독일의 헌법재판소와의 결별을 선언하는 것으로서, 애초부터 법률을 진정으로 수호할 의사가 없었음을 증명하는 것이다. 독일 헌법재판소가 재판소원을 인정하는 것은 법관들 사이의 견해의 차이를 통해 독주를 방지하는 자체 견제체제를 갖추고 있다는 말이다. 그런데 한국의 헌법재판소는 재판소원을 금지함으로써 법관들 사이의 갈등구조 자체를 원천적으로 배제했다. 독재의 잔재를 쓸어 없애버리고 상식이 통하는 사회를 건설하기 위해 제일 먼저 해야 하는 일은 유신독재가 빼앗아간 국민개헌발안권을 되살리는 길, 또 사법적폐의 온상인 헌법재판소를 3권 분립의 견제 체제 내로 편입해야 하고, 궁극적으로는 주권자 민중의 감시 하에 두는 것이다. 법관은 일반법원은 물론 헌법재판소 법관의 판결도 그 정당성 여부에 대해서 검증받고 잘못된 판결에 대한 처벌, 피해구제 등의 조치가 제도적으로 갖추어져야 한다. 법관은 무오류의 신성(神聖)이 아니며, 그 부당한 판결에 대한 처벌 권한은 궁극적으로 주권자 민중에게 귀속되어야 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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