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기 재미있는 나라가 있다. 꼬불꼬불 나라라는 곳으로 그 나라에서는 왕만이 팔자수염을 기를 수 있다.

꼬불꼬불 나라의 수염왕은 자신만이 팔자수염을 기를 수 있도록 법으로 정하고 있다. 법도 자기마음대로 정하고, 일은 한 달에 한 번만 한다. 나라에 아무리 급한 일이 생겨도 자신의 마음대로 하고, 세금도 많이 걷는다. 그래서 결국은 국민들에 의해 쫓겨나게 되고, 쫓기는 몸이 된다.

어느 날, 사람들이 광장에 모여드는 것을 본 수염 왕은 그곳으로 가게 되고, 그곳에서는 하얀수염박사의 지휘아래 수염 왕의 재산을 어떻게 쓸 것인가를 정하기 위한 회의가 진행된다. 꼬불꼬불 나라의 국민들은 수염 왕의 재산을 어떻게 쓸 것인가를 결정하고자 만장일치의 방법을 선택하지만 자신의 것이었던 재산이 다른 사람들에 의해서 맘대로 쓰여지는 게 싫었던 수염 왕은 어느 안건에도 손을 들지 않아 아무것도 채택하지 못하게 했다. 그러자 사람들의 불평이 터져 나왔고, 결국 하얀머리 박사는 다수결의 원칙으로 하자고 제안하고 결국 그렇게 해서 수염 왕의 재산은 가난한 사람들을 위해 사용하는 것으로 결정이 난다.

두 번째 모임, 남자들만의 정치를 반대하는 여자들에 의해 여자도 정치참여를 하는 것에 대해 안건으로 채택하고, 정확히 1001명대 1001명의 남녀 비율이지만, 벼룩으로 인해 긁느라고 팔을 든 수염 왕 때문에 여자도 정치를 하는 것으로 결정이 난다. 이야말로 다수결의 원칙인 것이다. 하지만 가난한 사람들을 돕기 위한 회의를 할 때, 2002명이나 되는 사람들과의 의견조율은 쉽지 않았고, 결국은 마을 대표를 선정해서 회의를 하는 것으로 결론이 난다. 수염 왕은 여자들의 참정권을 인정했다는 이유로 다홍치마 마을의 대표가 된다.

첫 번째 대표회의, 가난한 사람을 돕기 위해 해야 할 많은 일들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된 사람들은 서로 일을 성격상 나눠서 하게 되는데 이것은 어이없게도 수염 왕의 아이디어다. 행정부를 맡은 수염 왕. 가난한 사람을 돕는 일에도 우선순위를 두기 위해 회의를 하게 되지만, 각 마을대표들은 자신들이 속한 마을의 사정을 우선시 해달라 요구를 하고 회의장은 아수라장이 된다. 모든 안건에 찬성하는 수염 왕에게 의견을 묻는 안경 샘. 소수의 의견도 소중하다고 말하는 수염 왕. 결국은 다수결로 2개 마을을 우선 돕는 것으로 정하고, 대학을 세우는 것은 세금이 걷히면 그것을 가지고 입법부와 상의하기로 한다.

꼬불꼬불 나라 때문에 자신의 나라가 걱정된 슬그머니 나라 왕은 몰래 꼬불꼬불 나라로 정탐을 오고, 왕권복귀를 위해 자신을 도와달라는 수염 왕을 무시한 채, 꼬불꼬불 나라의 대표와만 대화하겠다고 하고는 자신의 나라로 돌아가 버린다. 이 말을 계기로 대표의 대표가 필요함을 깨닫게 되는 수염 왕. 수염 왕은 이튿날 회의에 대표중의 대표를 뽑자고 안건을 내게 되고, 사람들은 수염 왕을 포함한 4명을 추천한다. 이로 인해 한 달간 선거유세를 하기로 하는 꼬불꼬불 나라

4명의 후보는 유세를 했다. 하얀머리 박사는 사람들을 일일이 만나 그들과 대화를 나누었고, 수염왕은 자신의 보석을 팔아 사람들에게 선심을 썼다. 그리고 투표 날, 하얀머리 박사가 대표로 당선되고, 수염 왕은 선거관리위원회 사람에 의해 부정선거 혐의로 체포를 당하고, 다홍치마 마을의 대표자격도 박탈당한다.

이 책은 초등학생을 대상으로 한 것으로 초등학교 4학년인 나의 아이에게 딱 맞는 책이었다. 먼저 앞부분을 읽은 큰 아이는 참 이상하고 재미있는 나라라면서 책에 대한 관심을 보였고, 두껍지 않은 책인지라 금방 읽어 내려갔다.

하지만 정작 도움이 된 것은 나였지 싶다. 이 책을 읽으면서 정치에 대한 나의 수준이 어느 정도인지 확실하게 깨달았고, 내가 정말 정규교육을 받은 사람이 맞는지 의심이 가기도 했다. 교과서로 배웠던 정치는 역시 주입식이었기에 졸업과 동시에 나의 뇌세포를 빠져 나와 저 어딘가를 부유하고 있는 모양이다.

이 책이 마음에 든 점은 우선 구어체로 되어 있다는 것이다. 엊그제 큰 아이 담임선생님이 진행하신 ‘부모독서교육’에서 선생님은 아이들에게 구어체로 책을 읽어 주라고 하셨는데 이 책은 구어체로 나와있어서 그냥 읽어주면 되는 것이다.(책을 읽어 주라고 엄청 강조하셨다)

두 번째는 캐릭터가 재미있고, 내용이 무척이나 쉽게 적혀 있다는 것이다. 물론 전문용어들에서는 아이들이 쉽게 받아들이지 못할지라도 앞으로 사회라는 과목을 배울 아이들에게 있어서 이 책을 스윽 읽는 것만으로도 나중에 도움이 될 것이 확실하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세 번째는 이 책의 구성이다. 각 장마다 우선은 수염 왕과 꼬불꼬불 나라의 이야기가 나오고, 그 뒤에 아이들이 질문하는 형식을 빌어 구체적인 내용을 설명하고 있다. 하지만 이것도 딱 아이들의 눈높이 이다. 그리고 그 뒤에 ‘잠깐코너’라고 해서 국가란 무엇일까요?등 전문용어들을 아이들에게 이야기하듯이 풀어놓았다. 물론 이 부분은 쉽지 않지만 읽는 아이들의 수준에 맞춰 뛰어 넘어도 무방하지 싶다. 그러다가 나중에 읽어보면 또 도움이 될 것이라 보여진다.

네 번째는 민주주의와 관련된 여러가지들(민주주의가 발생한 배경과 여성참정권의 유래, 우리나라의 정치의 흐름, 대통령제, 헌법이나 의무등등등)에 대해서도 한번씩 짚어주고 있다는 것이었다. 이 책이 초등학생용임을 감안할 때 더 자세한 내용은 결국 독서가 아닌 교육이라는 느낌으로 다가와 거부반응이 일 것이라 생각된다.

다섯 번째는 아이의 질문에 대한 답을 그들의 눈높이에 맞게 해 줄 수 있다는 것이다. 그 동안은 간단한 질문에도 정확한 답을 할 수 없어 ‘아빠한테 여쭤 봐’라고 말을 돌렸었다. 하지만 이제는 적어도 ‘응 그것은 말이지~ ‘하고 한 줄 설명 정도는 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일단 내 입장에서는 이 책이 재미있었다. 자신의 빼앗긴 재산이 아까워 사람들이 마음대로 하지 못하도록 이리저리 머리를 굴리는 수염왕이지만 그것들은 민주정치를 위해 아이디어가 되어 꼬불꼬불 나라의 발전에 기여한다. 그래서 심술궂지만 귀엽다.

쉽게 할 수 없는 것이 책 선물이라지만, 나는 이 책을 이제 초등 4,5학년이 있는 지인들에게 선물할 예정이다. 초등자녀의 정치이야기 입문서로 손색이 없다고 판단된다.

아이들 책이지만 내 마음을 잡아 끄는 말이 있었으니 아래와 같다.

l 소수의 의견을 무시하면 그건 민주주의가 아니라 다수의 독재이다.

l 완전한 평동은 없다. 단지 조금 더 평등한 사회는 만들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