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산한 삶에서 만난 순간을 삭히고 발효시킨 웅숭깊은 시들
이창윤의 첫 시집 『놓치다가 돌아서다가』는 시간(세월)이라는 띠를 따라 안에서 안으로 이동하는 것처럼 보이나 실상은 안과 밖이 구별되지 않는 뫼비우스 띠 위를 하염없이 맴돌고 있는, 에셔(Maurits Cornelis Escher) 작품에 등장하는 개미와 같은 존재의 삶에 천착하고 있다. 내가 살아 움직이는 동안 시간은 끊임없이 흐르지만 반복되는 일상과 삶의 통증은 그대로 존재한다. 이상과 현실 사이를 넘나들며 삶의 통증을 완화시켜보려 애쓰지만 현실은 극한의 반복에서 벗어날 수 없고, 지향점조차 없는 무한반복의 굴레에 빠져든다.
그런 와중에도 시인은 절망하지 않고 행복을 찾으려 시공간의 안과 밖을 수시로 넘나든다. 하지만 삶은 반복되는 일상과 현실의 억압에서 한 치도 벗어나지 못한다. 『놓치다가 돌아서다가』는 시인이 자서(自序)에서 밝혔듯, “불우와 빈곤으로 점철된 어린 날”을 “시적 자양분” 삼아 “시간의 출렁다리를 위태롭게 건너”고자 하는 욕망을 보여주지만, 세상은 늘 현실을 외면한다. 현실이 또 다른 현실을 끌어안는 바로 그 순간, 시는 현실에 안주하지 않고 새로운 길로 들어선다. 현실의 삶이 다른 삶의 모습을 창조하고 변화시키는 자리에서 시는 삶의 다른 모습으로 다가온다.
이창윤 시의 특징 중 하나는 몸의 언어가 많다는 것이다. “몸은 고독의 집/ 마음속 흔들림”(「기형도를 읽다」)이므로 시간(세월)의 흐름을 거스를 수 없는 몸과 마음은 병(病)의 침입에 점차 자리를 내어준다. “열어두었던 문에 빗장이 걸렸”(「폐경」)고, 혈관에는 폐수가 흐르고(「다시 붙이는 벽보」), 머릿속에서는 “두드리는 망치 소리/ 정으로 쪼는 소리/ 둔기를 휘두르는 소리”(「편두통 건너기」)가 들리고, “망각에 감염된 물고기가/ 언어의 살을 파먹”(「알코올성 치매」)고, “몸이 헐거워”(「요실금」)졌고, “눈에는 메마른 사막이 착륙”(「안구건조증」)하는 등 몸은 통제의 영역에서 벗어나 마음의 영역까지 흔든다. 여는 시 「그들의 경전」의 “날카롭게 끓던 소리의 촉수들”을 단절하고 고요, 적막, “침묵의 시간”에 침잠하고 싶지만 그러기에는 “눈물의 주파수가 아직 뜨”거워 시적 은유의 세계로 빠져든다.
이창윤 시인의 시를 읽다보면 발목 잡히는 시구를 발견하게 된다. “나무줄기에 매달린 울음의 빈집마다/ 깃든 적막이 환하다”(「그들의 경전」)는 이 한 줄이야말로 시인 자신의 ‘지금’을 가장 절절하게 표현한 게 아닐까? 울음마저 떠난 빈집에서 환한 적막을 마주 보고 앉은 한 여인이 절로 그려진다. 시를 쓴다는 것은 스스로에게 촘촘한 그물을 던져, 내면 깊숙한 곳에 가라앉은 진아(眞我)를 건져내는 과정이기도 하다. 이창윤 시인의 시는 그 문법에 충실하다. 삶에서 만난 신산한 순간들이 안에서 삭고 발효되어 웅숭깊은 시들을 낳았다는 걸 어렵잖게 짐작할 수 있다. 그는 시어를 감각의 틀 속에 넣어 변주하는 데 골몰하지 않는다. 대신 대상의 본질을 들여다보고 풀어내는 데 전력한다. “높은 제단에 바쳐져 피 흘리는 순결한 제물이기보다는 마음의 결박 풀어주는 해방구”(「시를 품고 날다」)가 시를 쓰는 이유이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