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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Book] 현향기 2권 (완결)
글쓴이
이리리 저
출판사
가하
출판일
2018년 8월 1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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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이미지

이리리

좋아하는 것 - 해피 엔딩, 동족을 제외한 동물, 지오반니 갈리 초콜릿, 브뤼셀
싫어하는 것 - 새드 엔딩, 동물을 싫어하는 동족(인간만 살라고 만들어진 지구가 아닙니다), 서울의 바뀐 버스 노선(불가사의 수준, 땅 속 세상에 입문하는 계기가 됐다), 멍*부.

『현향기』, 『연의 바다』, 『광시곡』, 『마녀의 정원』, 『일월』, 『영원의 미로(공저)』를 출간했다.

책 소개

분야로맨스
1. 작품 소개

※ 본 작품은 삼국시대를 배경으로 한 역사 로맨스이며, 당시 사회의 풍습을 바탕으로 쓰여졌습니다. 현대 관점으로 볼 때 다소 강압적인 관계 등 개인에 따라 호불호가 나뉘는 내용이 일부 포함되어 있습니다. 이용에 참조 부탁드립니다.

가야금 음률을 따라 흐르는 향기로운 이야기, 현향기(絃香記)!

융의 진심이 담긴 석경을 받은 아사. 하지만 가야의 부흥을 바라는 이들의 청 역시 외면할 수 없었다.
한편 융과 신라 왕실에 대한 증오에 불타는 미실은 이게 그 복수를 시작하고, 아사는 그녀의 도움으로 신라를 탈출하는데…….

“영수. 난 당신과 혼인할 수 없어.”
항상 부드럽고 흥분하는 법이 없었던 영수 왕자마저 언성이 높아졌다.
“그게 무슨 소리야, 아사! 도대체 갑자기 이러는 이유가 뭐야?”
아사는 두 눈을 질끈 감고 두 사람 앞에 그동안 힘겹게 감춰왔던 비밀을 터뜨렸다.
“왜냐면……, 난 지금 융의 아이를 갖고 있어.”

2. 미리 보기

아사는 문효의 가슴에 꽂혔던 화살 뒤꽁무니를 숯불이 발갛게 달아오른 화로에 넣었다. 가야에서부터 내내 가슴에 품고 마음이 약해질 때마다 그것을 만지며 복수를 다짐하고 자신을 다잡아왔던 세월의 상징이었다. 그러나 이제는 모든 게 다 부질없이 느껴졌다.
‘미안하다, 문효야. 심지 굳지 못한 네 누이를 용서해다오. 우리 그냥 이렇게 다 훌훌 떨쳐버리자꾸나.’
바싹 마른 화살 꽁무니가 파지직 순식간에 타들어가는 것을 보면서 아사는 융이 아침에 주고 간 석경을 들어 올렸다. 문효의 한이 담긴 화살, 융의 연심이 담긴 석경을 함께 태워버리며 융과 신라에 대한 모든 원한과 그에게 생긴 묘한 연민의 정까지 다 태워버리라 작정했지만 석경 반 조각은 불이라도 붙은 듯 그녀의 손 안에서 뜨겁게 느껴졌다.
꼭 융을 불속에 던지는 것 같아 마음이 아팠지만 아사는 눈을 질끈 감았다. 화로 위에서 석경을 든 손을 펴려는 순간 집사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마님, 미실 궁주께서 뵙기를 청하십니다.”
자기도 모르게 후다닥 석경을 탁자에 내려놓으며 아사는 얼른 목소리를 가다듬었다.
“어서 모시게.”
집사의 안내를 받아 시녀들과 방에 들어온 미실은 따뜻한 5월에 이게 웬 건가 하는 표정으로 화로를 일별했지만 별말 없이 아사의 맞은편 의자에 앉았다.
“오랜만에 뵙습니다.”
“예.”
아사는 뜻밖에 미실의 방문이 의아한 동시에 난처해서 어쩔 줄을 몰랐다.
‘혹여 미루가 보낸 사람이 지금 오면 안 되는데.’
그런 아사의 걱정을 읽은 듯 집사가 나가자 미실은 아사를 보며 조용히 속삭였다.
“걱정 마십시오.”
“예?”
미실은 얼굴에 놀람이 그대로 드러나는 아사를 보며 웃었다.
“오늘 사로부가 공주를 두고 나간 것이 신기할 지경이군요. 공주는 어찌 그렇게 얼굴에 감춰지는 것이 하나도 없습니까?”
융이 오늘 급히 나가야 하지만 않았다면 틀림없이 그가 모든 걸 알아채고 탈출 계획이 물 건너갔을 거였다. 그래도 그 사실을 인정하기 싫어 아사는 냉랭한 시선으로 미실을 마주 봤다.
“어찌된 일입니까? 전 궁주의 도움은 필요 없다 하지 않았습니까?”
“이건 공주를 모시던 미루란 무사와 저의 거래니 공주께선 아무런 부담을 가질 필요가 없습니다. 결국 공주께는 제가 갚지 못할 빚을 안은 거지요.”
“미루와? 그가 무슨 일을 한 건가요?”
“그것은 미루에게 직접 물어보시지요. 그나저나 떠나기 싫어지기라도 한 건가요?”
미실의 도움을 받기가 영 찜찜했지만 어차피 융을 떠나야 한다면 이것이 마지막 기회일 수 있었다. 입을 다물고 가만히 미실의 다음 행동을 기다리는데 그녀는 자신의 시비에게 엉뚱한 명령을 했다.
“무진, 목이 마르니 집사에게 다과상을 좀 봐오라 이르게.”
“알겠습니다, 궁주님.”

꽃놀이나 동네 장정들이 힘을 겨루는 씨름 구경을 가자고 구슬이며 친하게 지내는 하녀들이 충동질했지만 아지는 몸이 아프다는 핑계로 남았다. 별채를 향해 고개를 빼고 이제나저제나 하며 계속 밖의 동정을 살피고 있었다.
그런 참에 집사가 별채로 다과상을 내어 가라는 소리를 하자 찬방으로 들어가 거드는 척을 하기 시작했다.
찬모는 아지가 아사의 시중드는 일에서 쫓겨났다는 것은 알았지만 별채 출입까지도 금하는 명령을 몰랐기에 얼쩡거리는 아지에게도 일을 맡겼다.
“아지와 자근아기는 이 다과상을 별채로 날라 가렴, 에휴. 돌아가신 사다함 나리만 불쌍하지.”
“그러게요. 미실 아씨는 상한 기색도 하나 없이 여전히 선녀 같더구만요.”
“미실 아씨라니. 궁주님이라 해야지. 행여 입 잘못 놀려 경치지 말고 조신히 갖다 드려.”
“예…….”
아지는 찬모와 하녀의 수다를 들으면서 가장 어려운 고비를 무사히 넘긴 것에 안도의 한숨을 쉬었다.

이미 떠났으리라 생각했던 아지가 차를 들고 오는 것을 본 아사는 놀라 말문을 잃었다. 미실은 그런 모습을 못 본 척하며 아지와 함께 온 하녀를 내보냈다.
“넌 밖에 있는 시녀들에게 다과를 돌리도록 해라.”
“예, 궁주님.”
자근아기가 나가자 아사는 겨우 정신을 수습해 아지에게 낮게 물었다.
“어찌된 거야, 아지? 왜 아직 여기 있는 거니?”
“공주님을 보낸 뒤에 뒤따르기로 했습니다.”
“자, 자, 시간이 없으니 서두릅시다. 향아, 빨리 옷을 바꿔 입거라.”
미실을 그림자처럼 따라다니는 중년의 시비 무진과 함께 유일하게 방으로 따라 들어온 시동이 자신이 입은 옷을 벗기 시작했다. 아무리 어린 시동이라고 해도 남자가 눈앞에서 옷을 훌훌 벗는 것에 어안이 벙벙했지만 놀랍게도 옷을 벗은 시동은 아사 또래의 여인이었다.
향이는 무진이 내민 작은 보따리에서 시녀들이 입은 것과 똑같은 옷을 꺼내 입고 자신의 남복을 아사에게 내밀었다.
“속히 갈아입으십시오.”
가야에서 어지간히 말괄량이 노릇을 하고 사람들을 기함시킨 아사였지만 남복을 한다는 것은 꿈도 꾸지 못했다. 때문에 옷을 받아드는 그녀의 손이 떨렸다. 미실은 그 시간도 아깝다는 듯 무진과 아지에게 낮게 명령했다.
“빨리 공주를 도와드려라. 이러다 날이 새겠구나.”
아사는 쓸데없는 미련에 공연히 시간을 끄는 자신이 미워져서 고개를 저었다.
“필요 없어요. 내가 하겠어요.”
줄줄이 늘어선 시녀들과 미실 앞에서 옷을 갈아입고 싶지 않아 아사는 향이와 함께 곁방으로 서둘러 들어갔다.
아사가 곁방으로 사라지는 것을 보자 미실이 다소곳이 서 있는 아지에게 감탄 어린 어조로 중얼거렸다.
“네 덕분에 뒤가 더 튼튼해지긴 하겠다만 주저 없이 이 길을 택할 정도로 저 공주가 그리 네게 소중한 존재더냐?”
다른 때라면 상대가 누가 됐건 신라인에게 절대 할 수 없는 대담한 고백이었다. 하지만 미실 역시 한배에 탔고 지금 발을 뺄 수 없다는 것을 확신하는 아지는 확고한 어조로 본심을 토로했다.
“제 친동기보다 가까운 분이기도 하지만……. 대가야에 남부여의 힘을 얹어줄 유일한 희망이시지요.”
“그래. 맞는 말이다마는……. 사로부에게 몸을 망친 공주를 과연 남부여 왕실에서 받아줄 거라 생각하니?”
별 뜻 없이 던진 질문이었건만 아지의 반응은 뜻밖에 격렬했다.
“영수 왕자님은 그런 분이 아닙니다! 불가항력이었던 일로 공주님을 박대하고 대가야와의 우의를 버릴 소인배로 취급하지 마십시오!”
깊은 물처럼 고요하던 아지의 반응에 뭔가 짚이는 듯 미실이 입을 떼려는 순간 곁방에서 옷을 갈아입은 아사가 들어왔다. 아사를 보자 아지와 미실은 약속이나 한 듯 입을 다물었다.
머리를 남자처럼 틀어 올려 향이가 내민 복건을 가능한 깊게 눌러쓴 아사는 영 어색한지 몸을 불편하게 움직이며 미실에게 물었다.
“이런 걸로 집사의 눈을 속일 수 있을까요?”
“사람이란 본래 눈앞에 빤히 들이댈수록 오히려 잘 보지 못하는 법이지요. 공주가 남복을 해서 자기 눈앞에 있으리라 꿈도 꾸지 못할걸요. 시동들과 시녀들의 얼굴을 그가 유심히 볼 이유가 어디 있겠어요. 공연히 벌벌 떨어서 산통을 깨지 말고 침착하게 행동하면 탈이 없을 겁니다.”
아사는 미실을 따라 일어서며 아지에게 당부했다.
“아지야, 너도 빨리 와야 한다.”
“걱정 마세요, 공주님. 오늘은 노비들도 다들 놀러 나가고 있으니 그 틈에 끼어 저도 곧 뒤따르겠습니다.”
미실은 묘한 눈초리로 아지를 슬쩍 보면서 서둘렀다.
“자, 빨리 나가시지요.”
아사는 머뭇거리다 탁자 위의 석경 조각을 얼른 가슴에 넣고 미실의 뒤를 따랐다.
집사의 배웅을 받을 때 아사는 자신의 심장이 뛰는 소리를 그가 못 듣는 것이 신기했다. 그는 미실의 예상대로 시녀가 한 명 더 늘어난 것도 전혀 알아채지 못하고 돌아가는 미실을 배웅했다.
그렇게 아사는 아무런 저지도 받지 않고 일 년 넘게 감옥이자 새장이었던 융의 저택, 명활궁을 허무할 정도로 손쉽게 빠져나왔다. 아사는 멀어지는 명활궁을 남몰래 살쩍 뒤돌아보며 작별을 고했다.
‘융. 이번 생에선 우리 인연이 이걸로 끝이네요. 내생이 있다면……. 그때는 당신이 외롭지 않도록 곁에 있을게요.’
수련 공주와 행복하란 축수를 하고 싶었지만 차마 그것만큼은 빌어지지 않았다. 아사는 자신의 속 좁음을 비웃으며 고개를 돌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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