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책 『나의 스승 박윤선 박사』는 1960년대 초에서 1988년까지 박윤선 목사님과 함께 사역했던 내 개인의 경험을 기록한 것이다. 지금은 교회도, 교파도 많아졌고, 수많은 목회자들과 신학생들이 넘치고 있다. 그러나 한국 교회는 오늘에 와서는 바른 신학도 바른 신앙도 별로 관심이 없고, 교회 연합이란 좋은 구실로 종교다원주의와 혼합주의가 점차 힘을 얻고 있다.
한편 많은 교회 지도자들이 교회 성장과 부흥을 지상과제로 삼은 나머지 수단 방법을 가리지 않고, 미국식 번영 신학의 영향을 받아 심리학이나 경영학에 감염된 설교와 목회가 대세이다. 그래서 역사적 정통적 개혁주의 신학과 신앙을 주장하면, 그것은 시대에 뒤떨어진 과거의 역사적 유물쯤으로 아는 사람들이 점점 많아지고 있다.
한국 교회가 지난 130여 년 동안 하나님의 은혜와 축복으로 이만큼 부흥한 것은 사실이지만, 지금에 와서 보니 교회의 부흥을 목적으로 속도만 강조했지 방향은 바로 잡지 못했다. 그래서 교회도 부익부 빈익빈 현상이 일어났고, 제대로 교육받지 못한 수많은 목회자들이 배출되어 사역지가 없어 방황하고 있다. 한국 교회는 대책 없이 수를 헤아릴 수 없는 많은 신학교가 생겨났고, 교파주의를 넘지 못하고 분열에 분열을 계속 거듭하고 있다. 특히 장로교회들 모두가 앞장세우는 구호는 개혁주의니 칼빈주의를 주장하면서, 끝없이 나뉘어지는 것은 신학과 신앙의 문제이기 전에 실제로는 정치적 헤게모니 문제였고, 양심의 문제이자 도덕적 문제이기도 했다. 겉으로 부르짖는 구호는 거창하나 한국 교회는 개혁주의 신학과 신앙을 잘 모를 뿐 아니라, 물량주의와 인본주의가 만연하여 한국 교회의 장래를 가늠 할 수 없게 되었다.
이런 현상에 대해 평생을 신학교육에 몸 담았던 필자로서는 민망하고 부끄럽기 짝이 없다. 그래서 우리 시대의 개혁주의 신학과 신앙의 모델이 되었던 정암 박윤선 박사의 학문과 경건의 삶을 가장 가까이서 지켜본 필자로서, 박윤선 박사의 개혁주의 신학과 신앙, 그리고 경건의 삶을 역사적 기록으로 남겨야 하겠다는 강한 충동 때문에 이 글을 쓰게 되었다. 물론 박윤선 목사님과 함께 했었던 분들이 많이 있고, 합신과 영음사를 중심으로 몇 종류의 박윤선 박사에 대한 유훈과 역사에 대해서 여러 권의 책들이 나왔으니 감사한 일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필자는 가장 가까이서 오랫동안 박윤선 박사를 도우며 지켜 보아왔기에 이런 글이라도 꼭 써서 후세에 남겨야겠다고 생각했다. 이제 박윤선 박사가 세상 뜨신지 30여 년이 지나자, 박윤선 목사님에 대해서 잘 알지 못하는 목회자들과 신학생들과 평신도들이 그의 신학과 신앙, 삶을 과소평가 하거나 잊어버리는 것이 참으로 안타깝다.
박윤선 박사는 평양신학, 만주봉천신학, 고신, 총신, 합신을 통해서 한국 교회에 심어준 그의 성경 주석, 그의 설교, 그의 기도는 오늘의 한국 교회가 잘 계승되어야 하리라고 본다.
이 책의 내용은 순전히 박윤선 목사님과 필자와의 개인적인 관계에서 있었던 이야기이다. 그러므로 자연히 박윤선 목사님의 삶과 박윤선 목사님을 멘토로 하여 그의 삶을 따라 가려던 필자와 얽힌 뒷이야기를 어쩔 수 없이 많이 하게 되었다. 그것은 필자의 삶을 들어내기 위함이 아니고, 박윤선 목사님을 따르다가 어쩔 수 없이 말하게 된 점을 독자들은 이해해 주시기를 바란다. 필자의 소원이 있다면 한국 개혁교회, 특히 장로교회에서 박형룡, 박윤선 박사의 바른 신학과 신앙, 경건의 전통을 잘 이어가야 한다는 것이다. 그래서 한국 교회는 이처럼 세속적인 인본주의 사상이 창궐한 이때에, 16세기 요한 칼빈, 존 낙스, 청교도 존 오웬, 조나단 에드워즈, 아브라함 카이퍼, 바빙크, 월필드, 스킬더, 메이첸 등의 전통을 잘 이어서 세계 선교의 교두보 역할을 했으면 한다. 어떤 이들은 빠르게 변화하는 현대 세계에서 전통적 개혁주의 신학과 신앙에 대해서 비판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어두웠던 이 땅에 칼빈과 칼빈주의 신학과 신앙을 우리에게 전수하신 박윤선 박사의 삶을 바로 이해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이 책의 부록에는 다음과 같은 내용이 실려 있다.
첫째, 필자가 쓴 박윤선 박사의 생애와 사상, 그리고 설교에 대한 것이 10여 개 언어로 번역되었기에 영어, 일본어, 중국어 등의 첫 페이지를 사진으로 싣는다.
둘째, 박윤선 박사님이 돌아가시고 미국 샌프란시스코에서 고신, 총신 동문들이 모여 그분을 기리며 예배한 정암 박윤선 목사 추모예배 순서가 실려 있다. 또한 박윤선 목사님과 평양신학교 동기 동창이면서 합동 측 총회 총무와 총신에서 헌법과 교회 정치 교수로 있던 김상권 목사님의 추모사가 있다.
셋째, 필자는 평생 박윤선 박사로부터 50여 통의 편지를 받았는데, 이것도 역사 자료로 아주 중요한 것으로 알고 육필 그대로 영인했다. 이 편지는 1970년에서 1980년 사이에 박윤선 목사님이 필자에게 보낸 것 들이다.
금번에 필자가 이 책을 출판하게 된 특별한 의미가 있다.
첫째로, 금년은 정암 박윤선 박사님이 주님의 부르심을 받은 지 정확히 30주년이 되는 해이다. 한국 교회나 신학계에서 박윤선 박사가 남겨준 개혁주의 신학과 신앙이 다시 불일 듯 일어나게 하여, 한국 교회가 명실공히 세계 교회의 모범이 되고 세계 선교에 중심이 되었으면 한다.
둘째로, 금년은 필자가 1968년에 목사가 된지 정확히 50주년이 되는 해이다. 뿐만 아니라 필자는 박윤선 박사의 주례로 가정을 이룬지도 꼭 50년이 되었다. 또한 필자가 총신대학교 및 신학대학원 교단에서 가르치기 시작한 것도 51년이 되었다.
이 뜻 깊은 해에 나의 스승, 나의 멘토 박윤선 박사와 함께 했던 뒷이야기를 역사적 기록으로 남겨 한국 장로교회, 곧 개혁교회가 나아갈 방향을 제시하기 위해서 이 책을 펴내게 되었다. 그리고 필자는 2006년에 이미 賢岩 鄭聖久 博士 회고록, 『은총의 포로』를 집필한 적이 있다. 이 책은 필자와 박윤선 박사와의 얽힌 뒷이야기를 제2의 회고록으로 쓴 것이라고 봐도 좋을 듯하다.
이 글에서 혹시 필자가 잘못 알고 쓴 것이나, 이 글을 읽으시는 가운데 필자와 입장이 다른 분이 있으면 용서해 주시기 바란다. 그리고 존칭을 쓸 때, 박윤선 목사, 박윤선 박사, 박윤선 교장 등 다양하게 기술했지만 이런 표현은 상황에 따라 달리 표현했음을 독자들이 널리 양지해 주시기 바란다. 이 글의 목적은 다만 박윤선 박사의 칼빈주의적 신학과 신앙, 그리고 그의 삶을 옳게 전달하고, 한국 교회의 역사를 바로 잡아 한국 교회 미래의 방향을 제시하려는 필자의 간절한 기도와 소원을 담았을 뿐임을 널리 이해하여 주시기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