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제타 셔우드 홀(Rosetta S. Hall, 허을,1865-1951)
1865년 미국 뉴욕주의 리버티에서 태어나 독실한 기독교 가정에서 성장했다. 1889년 펜실베니아 여자의과대학을 졸업하고, 1890년 미국 북감리교 소속 의료선교사로 한국에 들어와 정동의 보구여관에서 의료사역을 시작했다. 이후 1891년 한국에 파송된 윌리엄 홀(William J. Hall) 선교사와 결혼해 셔우드 홀과 이디스 마가렛 홀을 낳았다. 남편 윌리엄 홀과 딸 이디스를 잃는 아픔을 겪었지만, 평양에 남편을 기념하는 기홀병원, 여성을 위한 광혜여원, 어린이를 위한 이디스 마가렛 병동을 세우는 등 남편의 사역을 이어가며 여성과 어린이를 위한 의료사역에 힘썼다. 또한, 평양에 한국 최초로 시각장애인을 위한 맹학교를 세우고 한글점자교과서를 발행하여 특수교육의 초석을 다졌다.
로제타는 특별히 여성 의료인 양성에 힘썼고, 그녀의 통역을 맡았던 김점동(박에스더)을 미국에 유학 보내 한국인 최초의 의사 자격을 얻게 했다. 한편, 1928년 길정희, 김탁원 등의 한국인들과 함께 서울에 고려대학 의과대학의 전신인 조선여자의학강습소를 세워 여성의료인 양성을 위한 길을 열었다. 1933년, 43년간의 한국에서의 사역을 마무리하고, 미국으로 돌아가 1951년 85세를 일기로 소천하였다.
로제타의 한국사랑은 그의 아들 셔우드 홀(Sherwood Hall, 하락, 1893-1991)에게로 그대로 이어졌다. 1926년 아내 메리안과 함께 의료 선교사로 내한한 셔우드 홀은 폐결핵 퇴치운동에 앞장서며, 결핵 치료 자금을 마련하기 위해 1932년 12월 3일 한국 최초로 남대문을 그려 넣은 ‘크리스마스실’을 만들어 보급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