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의 대형서점을 산책해보자. 망가노모리(漫畵 の 森) 같은 대규모 만화전문서점이 있는 일본에 비해, 전문서점은 고사하고 대형서점조차 독립된 만화 코너가 없는 것이 우리 나라 현실이다. 아쉬운 대로 아동코너에 들어가 쭈삣쭈삣 만화책을 집어든다. 엄마손에 붙들린 아이도 만화책을 집어든다. '만화는 안 된다고 그랬지. 만화 보면 공부 못하니까 다른책 골라.'
만화는 좋은 작품이 나올 수 없다는 인식, 만화는 포르노그라피(pompgraphy)에 불과하다는 편견, 만화를 보면 책읽는 습관을 기르지 못한다는 몰이해 등은 만화에 화인(火印)으로 찍힌 숱한 주홍글씨들이다. 만화에 대한 이중적 인식을 극복하기 위해서는먼저 이러한 주홍글씨와 근거없는 저주를 푸는법을 고민해야 한다. - 본문중
필자는 이러한 고민의 일환으로, 만화일반에 대한 1부와 만화장르별로 살펴본 2부로 본서를 구성했다. 1부는 다시, 만화 보는 사람들, 만화를 얘기하는 사람들, 만화와 사는 사람들로 세분되는데, 만화에 대한 일반적 인식 및 제평가를 두루 훑어보며 편견에 대항코자 했고 만화제작의 현상황에 대해서도 일갈했다. 2부는 성인만화,아동만화, 리얼리즘 만화,독립만화 각각의 특징과 대표적인 만화가 및 그에 대한 필자의 소고가 재치있게 풀어져 있다.
95년 《스포츠서울》 신춘문예 만화평론에 당선된 이후 Sicaf(서울국제만화페스티벌) 95년에는 코디네이터로, 97년에는 큐레이터로 일한 경력이 반증하듯, 필자가 풀어놓은 가락은 만화에 대해 우호적이다.필자가 만화에 대해 애정을 가지는 데에는 공감할 만한 이유가 있다.
이저 Wolfgang Iser의 주장을 빌어와 작가가 창작해놓은 인쇄물을 '텍스트'라 이야기하고 독자가 읽고 이해하여 재생산해낸 텍스트를 '작품'이라고 한다면, 만화는 다른 어떤 장르의 예술보다 독자의 수용에 의한 텍스트의 구체화가 용이하다. 창작자와 작품, 독자의 소통 가능성이 크다는 말이다. 게다가 만화는 창작자에게 무한한 자유의 공간을 제공한다. 시각적인 형상과 비시각적인 형상들이 아우러져 창조되는 세계는 다른 예술매체에서 도달하지 못한 자유로운 공간이며 작가에게 무한한 창조성을 제공한다. 바로 이것이 지금까지 발견한 만화의 비밀이고 매력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