삐뚤어지고/ 울퉁불퉁 제 멋대로/ 몽글몽글 터질 듯 붉은 내/ 마음에/ 오동통통/ 달라붙은/ 살 -열두 살 전편

열두 살 소녀의 마음이, 몸이 넉넉하게 표현되어 있다. 의태어를 사용하여 그 모습을 오롯이 느낄 수 있도록 만들고 있다. 12살의 아이, 그 거칠고 생기발랄한 모습이 가감 없이 표현되어 우리들의 안목을 행복하게 한다.

열두 살 여우가/ 열다섯 살 여우 방에 들어가/ 쌍꺼풀을 만들고/ 립스틱을 바르고/ 옷을 입었다 벗었다/열다섯 살 여우가 아끼는 원피스를 꺼내 입는데/ 딱, 째려보고 있을 게 뭐람/.......(중략) -여우들의 세계 중에서

여우란 말 속에는 영리하고 교활한 이미지와 앙증스러운 느낌의 이미지가 들어 있다. 12살 소녀가 언니 방에 들어가 화장품을 꺼내고, 옷을 꺼내 입으며 성숙한 언니가 되고 싶어 하고 있다. 그렇게 빨리 자라고 싶은 모양이다. 그것이 언니에게 들켜 조신한 동생으로 빨리 돌아가는 모습은 웃음을 자아내게 한다. 소녀의 마음이, 손이 독자들의 마음에서 그림이 된다.

책은 3부로 이루어져 있고 <열두 살 여우> <예순일곱 살 여우> <여우가 아니라 곰> 등의 제목으로 표현하고 있다. 전체는 50여 편의 동시를 담고 있다. 독자들이 다가가기 쉽게 표현과 내용이 이루어져 있어, 아이들과 함께 읽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든다. 아이들의 감성을 잘 표현하고 있고, 12살 소녀가 지니는 마음들이 섬세하게 드러나 있다. 12살의 소녀가 미래를 꿈꾸며 현실 속에서 어떻게 살아가고 있는가? 하는 것이 언어에 그대로 나타나 있다. 어른들이 읽어도 공감할 수 있는 내용들로 이루어져 있다.

언니, 찬이 오빠 좋아하지?/ 미쳤나!/ 그래 놓고선 영화 보러 갔다

-거짓말 중에서

어린 시절에 나타나는 달착지근한 감성을 그대로 표현해 낸다. 사랑을 하고 있으면서 그렇지 않다고 거짓말을 한다는 뜻이리라. 눈에 보이는 것을 그렇게 아니라고 얘기하는 언니도 언니지만, 그것을 드러내는 소녀의 모진 감성.

아빠가 엄마한테/ 불쑥 내미는 꽃다발//달복이가 책상 서랍에/ 넣어놓은 초콜릿

-늑대가 여우를 꼬시는 방법 중에서

아이의 마음이 비유된 대상을 통해 눈에 밟힐 듯이 다가온다.

점점 허리는 굽어지고/ 자꾸 기운은 떨어지고/ 죽는 것쯤은 겁 안 난다는 할머니/ 마음에/ 알록달록/ 달라붙는/ 살 -예순일곱 살 전문

2부에는 할머니 얘기를 많이 하고 있다. 소녀의 눈에 비치는 할머니는 그대로 여자다. 그리고 여우다. 비록 몸은 말을 잘 듣지 않지만 그래도 빨강바지를 입고, 향수를 뿌리며 얼굴을 꾸미는 여자다. 할머니의 변화하는 모습이 잘 그려진다.

‘예쁘다’가 나이를 먹으면 ‘곱다’가 되지. 할머니의 ‘곱다’ 하는 말이 소녀에겐 ‘예쁘다’라는 말로 다가온다. 그렇게 할머니는 예쁘게 소녀의 눈에 비친다. 그렇게 살아가고 그렇게 생각한다. 할머니의 모습이 활기차게 느껴지는 것을 낱낱이 표현해 주고 있다.

3부에는 아빠 얘기를 하고 있다. 여우가 아니라 곰에서 곰은 아빠, 엄마다. 할머니에게 들은 아빠, 엄마 얘기는 소녀에게는 흥미로운 이야깃거리다. 두루 가족 얘기가 담긴 곳이 3부다. 3부에서는 행복이 가득 묻어난다. 자잘한 가정의 일상이 그려지기 때문이다.

달콤한 꿀 잔뜩 먹고/ 잠만 자고 싶다는 아빠를/ 할머니가 사람 만들어보겠다고/ 골머리깨나 앓았지만/ 아빠는 여전히 곰이다.// 그런 아빠를 보고도/ 남동생을 사람 만들어보겠다고/ 맵고 쓴 잔소리를 먹이는/ 엄마는 여우가 아니라 곰이다.// 엄마는 아빠와 남동생이랑/ 다른 꿈을 꾸는 곰이다. - 여우가 아니라 곰 전문

시대의 아픔을 달래는 내용도 있다.

내가 만약/ 그때 소녀였더라면// 딱/ 내 나이// 상상만 했을 뿐인데/ 바르르 떨린다. -소녀상 앞에서 전문

오빠 제삿날이면/ 밥 한 술 못 뜨고// 온몸으로 우는/ 우리 엄마// 시간을 얼마나/더 먹어야 나을까? -불치병 중에서

성장 통이 아프겠지만 잘 이겨나가고 있는 모습을 보여준다. 시대가 만들어낸, 자연이 만들어낸 아픔을 슬기롭게 다스리고 있는 소녀의 모습을 통해 우리가 어떻게 살아야 할 것인가를 생각해 보게도 한다. 가슴 따뜻한 얘기를 리듬에 담아낸 글들이 가득히 모여 있다. 많은 사람들이 읽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해본다.

예쁜 책이 나왔다. 소년, 소녀들의 마음이 자잘하게 그려지면서 그들의 육체적 성장과 함께 정신적 성장이 이루어지는 과정을 지켜보는 것은 무척이나 흥미로운 일이다. 이 책은 그런 역할을 충분히 해준다. 이런 유형의 글들이 많이 써지고, 책들로도 많이 나왔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해본다. 아이들에게만 읽힐 책이 아니라 어른들에게도 유용한 책이 될 듯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