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암오행침이라는 독특한 침술을 창안해낸 전대미문의 의학자였음에도 그 행적은 물론이고 본명과 생몰년도조차 기록이 남아 있지 않은 사암도인. 지금 우리가 그의 삶에 대해 알 수 있는 것은, 「침구요결」(鍼灸要訣)이라는 의서(醫書)에 적힌 ‘사암도인’이라는 이름뿐이다.
우리는 물질만능주의와 출세지상주의가 극에 달한, 즉 더불어 사는 지혜의 가치가 땅에 떨어진 시대를 힘겹게 살아가고 있다. 의술이 이미 상술로 전락해버린 모습이야말로 바로 그 단적인 예이다. 물론 조선시대도 다를 바 없이, 입신양명과 출세에 제 삶의 초점을 맞춘 사람들이 대부분이었을 것이다. 그러나 사암도인은 그런 이들의 삶을 조롱이나 하듯 자신의 본명조차 후세에 전하지 않았다.
소설 속에서 사암은 밝은 눈으로 그 의술의 경지를 알아본 허준의 추천으로 내의원과 왕실을 오가며 광해군의 총애를 받게 되고, 명나라로의 사신단에 합류하여 명황후를 고침으로써 중국의학과는 결을 달리하는 조선의학의 명예를 드높이고, 훗날 인조가 될 능양군의 생명까지 구해주지만, 결국 역사의 소용돌이 속에서 개혁의 뜻을 이루지 못하고 굶주리고 병든 백성들의 곁으로 돌아온다. 그리고 그제야 비로소 진정한 대동세상의 참된 의미를 깨닫는다. 사람이 사람답게 사는 세상이란 한두 사람의 마음이 바뀐다고 이뤄지는 것이 아니라, 민중들 한 사람 한 사람의 마음속에 생명존중과 대동세상의 씨앗이 심어져 꽃을 피울 때 실현될 수 있음을. 그리하여 사암은 이름 없는 떠돌이 의원, 곧 침객(針客)으로서 새로운 발걸음을 내딛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