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책은 제목이 주는 분위기와 달리 유유자적과 안빈낙도를 견지하는 낭만적인 풍경론이 아니다. 아울러 ‘철학은 펜이 아닌 운동화가 필요한 시대’라는 최근 대세가 되어버린 구호에 맞춰 신변잡기의 리듬을 따르는 이론과 현실의 가벼운 결합을 추구하려고도 하지 않는다. 저자는 그간 한국 사회의 독창적인 인문학자로서, 대중의 속도감 있는 지식의 소비 욕구를 순순히 응하지 않았던 특유의 고집과 그것을 뒷받침하는 관점, 형식을 토대로 현대사회가 잠식해버린 개념을 정제된 언어로 톺아본다.
맑은 날씨와 대조되는 자신의 뿌연 현재를 보면서 무심코 외치는 한숨 섞인 표현에서부터, 어느덧 우리 시대의 문화적 기억이 된 영화 봄날은 간다까지, ‘봄날은 간다’란 세속적인 우리의 삶에 스며든 관용어구가 되어왔다. 그러나 저자는 언제나 그렇듯 관습적 어휘와 낭만적인 수사, 흔한 인상비평을 거부하고 ‘어긋남’과 ‘어긋냄’에서 비롯되는 인문人紋의 산책을 감행한다. ‘공제控除의 비망록’이라는 부제에서 알 수 있듯이 산책자로서의 저자는 지금까지 타인과 부대끼며 살아온 자신의 연륜을 쉽사리 과시하는 고백의 틀을 벗어버리고, 자신을 진정 ‘비워내면서’ 마주쳤던 풍경과 그 기록들을 담담히 소개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