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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재집
글쓴이
홍여하 저
출판사
경북대학교출판부
출판일
2018년 12월 31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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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이미지

홍여하

목재(木齋) 홍여하(洪汝河, 1620∼1674)는 본관이 부림[(缶林, 부계(缶溪)]이며 부림 홍씨 15세다. 부림은 곧 그의 선향인데, 지금 경북 군위군 부계면 대율리 일대다. 시조는 고려 중엽 때 재상을 지낸 난(鸞)이고, 1세가 직장을 지맨 좌(佐)이며 5세 인석(仁?)과 6세 문영(文永) 때 상주로 이거하고 다시 8세 득우(得禹) 때 함창으로 이거했는데, 5세 인석 이후를 함창파라 부른다. 성종과 연산군 때 양대(兩代) 홍문관 대제학 곧 문형(文衡)을 지낸 홍귀달은 홍여하의 5대조가 된다. 그리고 인조 때 대사헌을 지낸 홍호의 아들이 홍여하다. 홍호는 정경세의 제자로 퇴계에서 유성룡, 정경세로 이어지는 영남학맥의 위치에 있었다.
홍여하는 자가 백원, 호가 목재와 산택재다. 안동부 성동리, 즉 지금의 문경시 영순면 율리에서 홍호와 장흥 고씨 사이에서 태어났다. 14세 때 모친 고씨의 상을, 27세 때 부친상을 당했다. 35세 때 생원진사시와 식년 문과에 합격했다. 37세 봉교로 있을 때 송규렴의 반대를 무릅쓰고 이상진과 이원정을 추천한 일로 파직되었다. 다시 그해 응지 상소를 올렸다가 고상도 찰방으로 쫓겨났으며, 40세 경성 판관으로 있을 때 현종이 즉위해 응지 상소를 올렸는데, 북방 군정의 폐단과 함께 이후원에 대해 붕당의 행태가 심함을 지적하자 이조 판서로 있던 송시열이 이것은 자신을 배척하는 것이라고 여겨 상소한 뒤 사직하는 사건이 일어났다. 당시 서인 측에서 이 상소가 윤휴 등이 조종한 것이라고 보아 크게 문제를 삼으면서, 그는 당쟁 속에 휘말려 들었다. 이때에는 제1차 예송이 터지기도 했다. 41세 때 병마사 권우의 일을 다시 문제 삼았다가 파직된 뒤에 충청도 황간으로 유배되었으며, 얼마 후 풀려나 고향 함창 율리로 돌아왔다.
율리로 돌아온 후 그는 산택재를 짓고 학문 연구와 저술에 매진했다. 51세 때 예천 북쪽 복천촌에 존성재를 짓고 잠시 이거했다가 53세 때 다시 율리로 돌아왔다. 55세 때 숙종이 즉위해 병조 정랑과 사간의 관직을 내렸으나 병으로 나아가지 못하고 세상을 떠났다. 예천의 흑송리에 장사 지냈으며, 이장 후 묘갈은 계당 유주목이 지었다. 1689년 갈암 이현일의 주청으로 통정대부 부제학에 추증되었다. 1693년 근암 서원에 배향되었다.

책 소개

분야소설/시/희곡
이 책은 목재(木齋) 홍여하(洪汝河, 1620-1674)의 문집 전체에 해당하는 한문 원문에 대한 교감 표점본이다. 12권 6책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권1과 권2는 시(詩), 권3은 소(疏), 권4는 서(書), 권5와 권6은 설(說), 책제(策題), 서(序), 기(記), 발(跋), 잠(箴), 명(銘), 송(頌), 찬(贊), 상량문(上樑文), 권7과 권8은 제문(祭文), 갈명(碣銘), 행장(行狀), 권9는 독서기(讀書記)와 잡저(雜著), 권10은 역사서에 대한 범례(凡例) 및 지(誌)ㆍ전(傳)ㆍ세가(世家) 등에 실린 총론(總論), 권11과 권12는 부록(附錄)에 해당한다. 홍여하는 본관은 부계(缶溪), 자는 백원(百源), 호는 목재(木齋)·산택재(山澤齋)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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