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단 안에서 희생당하는 개인의 비극을 고발한 거장 아서 밀러
마녀 사냥이 횡행하던 17세기 미국 매사추세츠 주 세일럼을 무대로
고발하는 자와 고발된 자의 일그러진 인간 본성이 그려 낸 비극적 초상
▶ 아서 밀러는 자신의 작품에 대하여 지극히 드문 성실함을 견지한 작가이다. ? 해럴드 핀터
▶ 극작가는 자신이 몸담은 나라 안에서 살아가는 존재다. 만일 그럴 수 없다면 그곳을 떠나야 한다.? 아서 밀러
현대 사회와 그 안에서 왜곡되어 가는 인간의 비극을 선명하게 그린 현대 희곡의 거장 아서 밀러. 그의 대표작으로 꼽히는 『시련』이 민음사 세계문학전집(286)으로 출간되었다. 이 작품은 1950년대 미국의 공산주의자 색출 운동인 매카시즘의 광풍 한가운데 발표된 시대의 역작으로, 당시 미국 사회의 왜곡된 모습을 1690년대 어느 폐쇄적인 공동체에서 일어난 마녀 사냥에 투영하여 사회적으로 큰 반향을 일으켰다.
청교도 이념이 지배하는 폐쇄적이고 금욕적인 개척자 사회 매사추세츠 주 세일럼. 그곳에 부임한 패리스 목사의 조카 애비게일은 영악한 소녀로, 일시적인 내연 관계에 있던 존 프록터를 향한 배덕적인 욕망에 불타 그의 아내 엘리자베스를 증오한다. 그러던 어느 날 패리스 목사는 흑인 노예 타투바와 동네 소녀들이 모여 벌인 집회를 현장에서 발견하고 마녀 행위의 징후를 의심한다. 애비게일은 작은 마을에 불기 시작한 마녀 재판 바람을 이용하여 엘리자베스를 제거하는 데 온 힘을 기울이고, 다른 소녀들을 선동하여 고발의 고리를 만든다. 고발당한 자가 자신의 생명을 보전하고 이익을 지키기 위해 다른 이웃을 고발할 수밖에 없는 파멸적인 연쇄 작용. 가장 약한 자부터 희생당하고 가장 고결한 자마저 옭아매는 이 소용돌이 가운데, 존 프록터의 정숙한 아내 엘리자베스는 마침내 마녀 혐의로 체포되고, 애비게일의 음모를 간파한 존 프록터는 아내를 지키기 위해 진실을 밝히려 나선다. 한 사회의 극단적인 이데올로기적 결속이 초래한 비정한 상황 가운데, 인간 본연의 욕망과 질투, 애정과 연민, 그리고 숭고한 희생의 장면이 펼쳐진다.
개인적 이익과 사회적 이념이 결부되어 집단적 광기로 번져 나갈 때 드러나는 인간 본성의 가장 추악한 진실을 생생하게 보여 준 이 작품은 매카시즘 열기에 대한 통렬한 풍자로, 사상을 의심받은 작가를 법정에 세운 당대 최고의 문제작임과 동시에, 오늘날까지 전 세계 무대 위에 상연되고 영화화되어 독자의 사랑을 받으며 문학이 사회에 제기할 수 있는 가장 준엄한 고발의 목소리로 여전히 살아 있는 메시지를 전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