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처음 어린 왕자를 읽었던 때는 중학교 2학년 겨울방학. 당시 국어과목을 담당하셨던 담임선생님은 여학생들의 감수성을 고려(?)해 문학작품을 소개해 주셨다. 그때 제일 먼저 선택했던 책이 바로 ‘어린왕자’ 였다. 왕자라고 하기엔 좀 부족한 듯 한 책 표지를 보면서 어린 왕자와 어린 공주의 사랑이야기는 아닐까 상상했지만, 내용은 전혀 달랐다. 15살. 어린 나는 이 책을 읽고 충격을 받았다. 그리고 엉엉 울었었다. 왜 그랬는지, 무슨 이유때문인지는 지금도 잘 모르겠지만, 길들여진다는 표현 때문은 아닐까 추측해 본다. 사람과 사람의 관계는 서로에게 길들여지기 이전과 이후가 다르다는 걸 15살 소녀는 알았던 것일까?

비행기 고장으로 사막에 불시착한 조종사는 그곳에서 어린 왕자를 만난다. 소년은 작은 별에서 왔고 자기별에는 한 송이 장미가 있다는 것을 알게 된다. 몇 군데의 별을 여행한 후 지구에 온 왕자는 지구라는 별에서 뱀, 장미, 여우, 조종사를 만난다. 그리고 여우를 통해 길들여진다는 의미를 알게 된다. 그리고 어린 왕자의 단 하나뿐인 장미를 생각하며 자신의 별로 돌아가게 된다.

이 책을 읽으면서 예전 기억이 새록 떠올랐다. 내가 어느 부분에서 폭풍 눈물을 흘렸는지..

“아저씨도 알 거예요. 누구나 몹시 슬픈 날에는 해 지는 모습을 보고 싶어 한다는 걸요.” “마흔네 번이나 볼 만큼 슬펐었니?” (38) 지금도 이 부분을 읽으면 눈시울이 뜨거워진다. 15살 소녀는 울고 싶을 때 울 수 있지만, 마흔이 넘은 중년의 엄마는 쉽게 울 수 없다. 하루 24시간. 그리고 하루 한 번의 해지는 모습. 그걸 오래 본다는 것은 누구에게든 보일 수 없는 슬픔이 함께하는 건지도 모르겠다. 어린 왕자는 혼자 있는 별에서 무엇 때문에 슬펐던 걸까? 무엇이 왕자를 슬프게 만들어 해 지는 모습을 마흔네 번이나 보게 된 걸까?

어린 아이들의 동화 같은 이 책은 눈물 나는 부분이 참 많다. 특히나 조종사와 어린왕자의 이별 부분은 참았던 눈물을 쏟아내게 하는 아픈 장면이다. “시간이 지나면 슬픔은 무뎌지기 마련이에요. 그래서 아저씨도 언젠가 슬픔이 지나가면 나를 알게 된 것이 기쁨이 되겠지요. 아저씨는 언제까지나 내 친구로 남을 거고, 나와 함께 웃고 싶어질 거예요. 그래서 가끔 괜스레 창문을 열게 되겠지요. 아저씨가 밤하늘을 보고 웃음 짓는 모습을 보고 친구들이 놀라면 ‘저 별들은 항상 나를 웃음 짓게 해.’ 하고 말해 주세요.” (140) 이별 없는 삶은 없다. 어린 왕자는 어른보다 더 성숙하고 어른보다 더 대담하게 이별을 맞이하고 준비한다. 길들여진 너와 나 그리고 우리는 이별이 쉽지 않다. 하지만 이별은 또 다른 시작일 수 있다고 생각한다면, 어린왕자처럼 이별할 수도 있을 것이다.

오래전 읽었던 어린왕자는 중학교 2학년 때 읽었고, 대학에 들어가서도 읽었고, 회사를 다니면서도 읽었다. 그리고 마흔이 넘어 다시 읽게 된 어린 왕자는 처음 읽었던 신선함을 없지만 깊이를 느낄 수 있었다. 어른이 되고서도 늘 인간관계는 어렵다. 때론 인간관계를 피하고 싶을 때도 있었다. 하지만 이 책을 읽으면서 관계한다는 것의 의미를 다시 생각하게 되었다. 누군가 나에게 손 내밀기를 바라지 말고, 먼저 손 내밀 수 있는 내가 되어야하고, 누군가의 어린왕자가 되어야 한다는 생각도 해 보았다. 내가 뭔가 시도하기 전에 누군가 뭔가를 해주길 바라면서 살았던 것은 아닌지 반성해 본다. 어린 왕자. 다시 읽어도 역시.. 하며 눈물 흘릴 수 있어 행복한 시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