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물어보는 연민의 한계, 양심의 명령들 그리고 전쟁의 본성
나무에 묶인 사람의 살갗과 살점을 저며내는 형벌을 '능지(凌遲)'라 부르는데, 가능한 한 죄인을 살려둔 채 며칠에 걸쳐 시행함으로써 고통을 극대화하는 형벌이다. 능숙한 집행자는 한 사람에게서 2만 점까지 도려낼 정도였다고 한다. 이 형벌은 보통, 사람이 많이 다니는 저잣거리에서 시행되곤 했다. 그런가 하면 미국에서는 집단 린치를 당해 목 매달려 죽은 이가 담은 사진을 대량 복사해 파는 사람도 있었다. 린치에 가담한 사람들은 기념품으로 간직하기 위해 이 사진을 찍었으며, 몇 장 정도는 우편엽서로 제작되기도 했다.
『타인의 고통』에는 세 부류의 사람들이 관련돼 있다. 책 속에서 고통스런 표정을 지어가며 죽어가는 이들과 그것을 즐기거나 혹은 두려워하며 바라보는 사람들. 그리고 지금 책장을 넘기고 있는 우리들. 우리는 그들이 겪었을 고통의 깊이에 대해서 어렴풋하게나마 짐작할 수는 있다. 그러나, 다만 바라볼 뿐이므로 실감은 하지 못한다. 그것은 사진 안에서 형을 집행하는 이들 역시 마찬가지였을 것이다. 그들에게 중요한 것은 어떻게 하면 죄인(이라 여겨지는 이)에게 최대한의 고통을 가해야 하는지 혹은 타인을 향한 타인의 증오를 대신 내뿜는 것 뿐이었다. 저자가 보기에, 그 광경과 사진은 일반인들에게 포르노그라피로서 작용을 하고 있다. 그들에게 '타인의 고통'은 연민의 대상임과 동시에 스펙타클한 '즐길 거리'로 자리매김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럼으로써 직접 경험해 보지 않고도 그 참상에 정통해지고, 진지해질 수 있는 가능성마저 비웃게 된다.
현대 스펙터클의 최고는 단연코 '전쟁'이다. 이미 걸프전이나 최근 이라크전을 통해 마치 게임처럼 보여지는 전장상황을 지켜봤던 우리들로서는 실감나는 대목이다. 사람들은 그 장면들을 보며 무기의 명중률이 얼마나 좋은가 얼마나 많은 이들이 죽었는가에만 관심을 갖는다. 이것들은 흔히 '전쟁 미학'이라 미화되지만 가장 빠른 시간에 가장 대규모로 고통을 유발하는 현실에 대한 눈가림일 뿐이다.
스펙타클이 아닌 실제의 고통이 무엇인지, "숭고하거나 장엄하며, 그도 아니면 비극적인 형태로 아름다움을 담고 있으니 유혈 낭자한 전투 장면도 아름다울 수 있다는 주장"이 얼마나 엉터리인지 되물으며, 타인의 고통에 개입할 능력을 잃어가고 있는 우리의 현실을 고발하는 책.
Regarding the Pain of Others is Susan Sontag's searing analysis of our numbed response to images of horror.
'A coruscating sermon on how we picture suffering' The New York Times
What is the purpose of images of pain and suffering? Can there be any real justification for the creation, and consumption, of such images?
In this seminal volume, Susan Sontag examines the uses and meanings of images, from inspiring dissent to fostering violence to creating apathy. And through this lens she considers the nature of war, the limits of sympathy, and the obligations of conscience.
'A far-reaching set of ruminations [...] on what it means to be alive and alert in the twenty-first century' Independent
'Sontag is on top form: devastating' Los Angeles Times
'Simple, elegant, fiercely persuasive' Metr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