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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Book] 서중석의 현대사 이야기 13
글쓴이
서중석 외 1명
출판사
오월의봄
출판일
2018년 9월 27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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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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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중석

1948년 충남 논산에서 출생했다. 서울대학교 국사학과를 졸업하고, 연세대학교 대학원에서 석사학위를, 서울대학교 대학원에서 박사학위를 받았다. 1979~1988년까지 『동아일보』 기자로 재직하며 농촌·노동문제 및 민주화운동을 취재했다. 특히 6월항쟁 당시 『신동아』 취재기자로 역사적 현장에서 그날의 사건들을 생생히 목격하고 기록했다. 현재 성균관대학교 사학과 명예교수이며, 역사문제연구소 이사장, 제주4·3사건진상규명및희생자명예회복위원회 위원 등을 역임했다.

주요 저서로 『80년대 민중의 삶과 투쟁』, 『한국 근현대 민족문제 연구』, 『한국 현대 민족운동 연구』 1·2, 『조봉암과 1950년대』 상·하, 『남·북협상―김규식의 길, 김구의 길』, 『비극의 현대 지도자』(일본어역), 『배반당한 한국 민족주의』(영역), 『이승만의 정치이데올로기』, 『한국 현대사 60년』(영어·일본어·중국어·프랑스어·독일어·스페인어로 번역), 『이승만과 제1공화국』, 『대한민국 선거이야기』, 『지배자의 국가 민중의 나라』, 『6월항쟁』, 『사진과 그림으로 보는 한국현대사』, 『서중석의 현대사 이야기』(전20권), 『민족주의와 역사교육』(정현백 공저), 『전환기 현대사의 역사상』 등이 있다.

책 소개

분야한국사
애인도, 친척도, 이웃도
간첩인지 의심하라는 무서운 세상

휴일 없는 총력 안보 궐기 대회, 4대 전시 입법과 학도호국단, 반상회, 극단적인 반공 운동, 긴급 조치 9호 발동, 야당의 무력화, 3차에 걸친 200여 곡의 금지곡 선정과 대마초 사건, 두 차례에 걸친 재일 교포 유학생의 간첩단 사건…… 국민들의 입을 철저히 봉쇄한 전 사회·국가의 병영화

인도차이나 사태와 중동 건설 특수,
유신 체제를 구해준 뜻밖의 구원자

유신 체제는 1972년부터 1979년까지 7년 동안 존속했다. 이 기간 동안 유신 체제를 존속하게 해준 것은 무엇이었을까? 유신 체제에 저항하는 움직임이 연이어 나타나자 박정희 정권은 민청학련·인혁당 재건위 사건을 조작해 사법 살인을 저질렀고, 갖은 저항 운동을 잔인하게 짓밟았다. 그러나 그것만으로 유신 체제를 지키기는 쉽지 않았을 것이다. 1975년 사법 살인이 일어난 후 유신 체제는 4년이나 더 존속했다. 이를 가능하게 만든 계기는 무엇이었을까?

박정희 1인 강권 체제를 연장시켜준 것은 인혁당 재건위 사건 관계자 등 8명을 사법 살인하고 고려대에 긴급 조치 7호를 발동하는 등의 초강경 조치가 아니었다. 두 구원자가 해외에서 나타나 1인 강권 체제를 연장시켜줬다. 그것은 인도차이나 사태(베트남·라오스·캄보디아 공산화)와 중동 건설 특수였다. 전자는 박정희가 열망하던 이른바 총력 안보 체제 구축에 이용할 수 있는 여건을 제공했고, 후자는 1976, 1977년의 경제 호황을 가져왔다.

특히 1975년 인도차이나 사태가 일어나자 박정희는 과거 어느 때보다도 총력 안보 체제 구축에 총력을 기울였다. 4대 전시 입법과 학도호국단, 반상회 등을 통해 기민하게 학원의 병영화뿐 아니라 전 사회·국가의 병영화를 이뤄냈다. 그와 함께 긴급 조치 9호를 선포해 국민들의 입을 철저히 봉쇄했고, 5·21 영수 회담 등 야당 회유·분열 공작을 통해 야당을 무력화했다. 또한 끊임없는 남침 주장, 전 국민적인 간첩 신고 운동, 이승복 동상의 전국화 등 전체주의 방식의 반공 운동을 대대적으로, 이전과는 차원이 다르게 전개했다. 이런 것들을 통해 유신 정권은 국민들의 입을 통제했고, 일상적으로 감시하고 통제할 수 있었다.

이러한 총력 안보 체제, 국가의 병영화와 경제 호황으로 반유신 민주화 운동은 별다른 관심을 끌지 못하고 고립될 수밖에 없었다. 『서중석의 현대사 이야기』 13권은 유신 체제 시기 박정희 정권의 ‘전 국가의 병영화’를 다루고 있다. 이 시기 박정희는 유신 체제 유지를 위해서라면 ‘포항에서 석유가 나왔다’와 같은 거짓말도 서슴지 않았다. 그리고 무고한 사람들을 간첩으로 내몰면서 공포감을 조성했고, 긴급 조치 9호를 발동함으로써 국민들을 일상적으로 통제했다. 또한 반공 운동과 간첩 잡기 운동을 벌이면서 국민들끼리 서로를 의심하게 만들기도 했다. 그야말로 총력 안보를 내세운 독재의 광기를 맘껏 내세웠던 시기였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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