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가장 예뻤을 때」의 시인, 이바라기 노리코의 대표작들을 모은 시선집.
단순한 언어에 깊은 뜻을 담는 일, 어렵지 않은 시어로 강력한 의지를 드러내는 일, 그리하여 세상을 조금이라도 나은 쪽으로 가게 하는 일, 이것이 이바라기 노리코가 시인으로 살면서 숨을 거두는 그날까지 쉬지 않고 해온 작업이다.
이바라기 노리코가 소녀였을 때, 일본은 전쟁을 선포했다. 소녀는 헌책방에 숨어들어 새와 달과 사랑을 노래하던 천 년 전 시를 읽으며 살벌한 전쟁의 시대를 버텼다. 그리고 스무 살 되던 해, 그녀의 나라는 전쟁에서 졌다. 전쟁의 폐허에서 벗어나, 빛나는 청춘의 시절, 자유와 희망이 가득한 곳, 사람들을 꿈꾼 이바라기 시인의 마음이 잔잔하되 절실하고 절절히 표현된 시편들이 여럿이다. 대담하고 박력 있는 어조로 여성의 목소리를 한껏 뽐낸 시집이 지어졌다.
이바라기 노리코가 세상을 떠난 후 시인의 서재를 정리하던 그녀의 조카는 ‘Y의 상자’라 적힌 종이상자를 발견한다. Y는 시인보다 31년 먼저 세상을 뜬 남편 미우라 야스노부의 이름 머리글자였다. 이바라기는 마흔아홉에 남편을 암으로 잃고 큰 상실감에 빠졌다. 삼십 년 넘는 긴 세월, 그녀는 남편의 빈자리를 아프게 더듬으며 더는 지상에 없는 사람을 그리는 시를 썼다. 하지만 너무도 솔직한 사랑 고백을 만인 앞에 드러내기가 꺼려져 차마 발표할 수는 없었다. 세상을 떠난 남편에게 띄우는 러브레터와 같은 시들이 ‘Y의 상자’ 속에 차곡차곡 쌓여갔다. 이 시들은 유고시집으로 출간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