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캉은 진정 프로이트가 말하고자 한 바가 무엇이며, 프로이트가 인간 이해에 가져온 지적 혁명의 본질이 무엇이었는지를 다시 한 번 명확히 하려고 분투한 20세기의 프로이트였다고 할 수 있다. 특히 프로이트의 딸인 안나 프로이트를 중심으로 미국에서 번성한 ‘자아심리학’에 맞서 라캉이 평생 벌인 투쟁은, ‘심리 치료’와 ‘정상적 자아의 회복’이라는 신화가 만연해 있는 듯한 오늘날의 한국 사회에도 시사하는 바가 많을 것이다. 이 책 『에크리』는 그에 대한 지난한 증언이라고 할 수 있다.
이 책의 ‘난해함’에 대한 대답을 라캉 본인의 말 그리고 푸코의 서평에서도 찾을 수 있는데, 독자도 동일한 노고를 기울여야, 즉 ‘나를 변화시켜야 이 책을 비로소 이해할 수 있다’는 것이 그것이다. 인문학은 분명 ‘교양’이기도 하지만 교양에 머무는 한 ‘이유식’ 교양, ‘연예’ 인문학에 그치는 역효과를 불러오게 된다. 작금의 한국 인문학은 여기서 크게 벗어나고 있지 못한 형국이다. 하지만 라캉의 이 책은 ‘의식’의 세계에만 시야가 갇힌 채, 우울증으로 직결되는 ‘자아’에만 매달린 채 이 세상을 사는 고통을 ‘교양’으로 봉합하려고 하는 우리에게 ‘나를 바꿀 것’을 촉구하고 있다.
특히 대학의 완전한 붕괴를 직면하고 있는 지금, 이 책의 거의 1/3이 정신분석의 ‘교육’, ‘공부’에 대한 내용으로 채워져 있는 점 또한 주목을 요한다. 사실 정신분석의 모든 것은 훌륭한 정신분석가의 양성 여부로 수렴된다고도 할 수 있을 것이다. 당연히 그것은 정신분석에만 해당되는 이야기가 아니다. 이와 관련된 분석 ‘주체’ 문제 등은 대학이 완전히 붕괴되고 무수한 사람이 헛된 ‘교양’을 추구하는 ‘인문학 열풍’이 부는 한국 사회에 교육과 가르침의 본질에 대해서도 많은 시사점을 제공해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