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규범』에는 사화(士禍)라는 정치적 환난 속에서 가문과 자식을 지키기 위해 고군분투하며 역경을 극복한 딸과 며느리 그리고 할머니, 남편과 한 약속을 지키려고 하룻밤에 10번이나 밥을 새로 지었던 아내, 병든 부모를 위해 간절함을 담아 기도하는 딸, 분수에 넘치는 물건을 과감히 사양한 여성, 돌아가신 아버지를 위해 묘역을 마련하고 아버지의 유문(遺文)을 모은 딸, 게으르고 자세가 바르지 않은 자식을 따끔하게 가르치는 어머니, 자식을 엄하게 가르치는 스승을 존경하도록 타이르는 어머니나 읍소하는 누나 등이 등장한다. 다양한 인간 관계 속에서 발생하는 여성의 역할 곧 딸, 며느리, 아내, 어머니의 역할을 보여준다. 삶에서 이런 역할들은 여성만 하는 일이 아니다. 가문과 자식을 위해 고난을 이겨내기, 자식으로서 효도하기, 가족과 한 약속 지키기, 자식 가르치기 등은 인간이라면 누구나 하는 일이다. 『규범』에 등장하는 행위 주체는 여자이지만 그것을 ‘인간’으로 확장하여 읽을 수 있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