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도 정치로 인해 사회 불안과 백성들의 고통이 커진 상황에서 성리학은 아무런 대안을 제시하지 못했다. 이에 조선 후기에 천주교를 비롯한 새로운 사상이 많이 등장했고, 동학도 그 중 하나였다. 몰락한 양반 가문에서 태어난 최제우는 동학을 창시하여 현실 정치에 불만을 품은 농민들로 하여금 큰 지지를 얻었다. 하지만 조선의 성리학적 질서가 흔들릴 것을 염려한 정부는 동학을 탄압하고 최제우를 사형에 처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동학의 교세는 점점 확장되었고, 극심한 탐관오리의 횡포를 견디지 못한 농민들은 전봉준을 중심으로 봉기하였다. 정부는 민란을 진압하기 위해 청에 지원을 요청했고, 이를 빌미로 일본군도 조선에 진출했다. 정부와 화약을 맺고 협상을 했던 농민군은 외세의 침략에 재봉기하였고, 반봉건과 반외세를 외치며 전국적인 농민 운동으로 확대되었다. 하지만 정부군에 의해 진압되는 과정에서 농민들은 무차별 학살을 당하였다.
한국사법정에 선 최제우는 동학의 창시자로서 이들을 대표하여 억울함을 호소하고 당시의 시대적 상황을 고발한다. 동학이 주장한 평등한 세상은 어떤 것이었는지, 동학 농민 운동은 어떻게 전개되었는지 한국사법정을 통해 자세히 알아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