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남자, ‘그림 되네’
중세의 날품팔이 일꾼에서 파스타를 요리하는 현대의 초식남까지
그림 속 여자들과 달리, 그림 속 남자들은 종종 추하거나 볼품없다. 서양미술사에서 남자들은 여자보다 좀더 현실에 밀착된 모습으로 그려졌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 남자들의 다채로운 이모저모를 찬찬히 들여다보면 천편일률적인 그림 속의 미녀들이 오히려 빛을 잃는 것 같기도 하다. 아름다운 소년, 사랑스러운 연인, 다정한 남편과 아버지, 한껏 멋을 낸 신사… 어느 시대에나 남자들은 이런 요구들 속에서 자신의 삶을 꾸려갔고, 화가들은 그들에게서 다양한 빛깔의 남성상을 포착해왔다.
그림 속 남자를 얘기해보자고 하면, 대상화되는 데 익숙하지 않은 남자들은 당황할지도 모른다. ‘그림이란 건 무엇보다 아름다운 여성, 그것도 누드가 제일 중요한 주제잖아? 남자랑 그림을 어떻게 엮지? 꽃미남들 누드나 보여주면서 여자들이 눈요기하는 책 아닐까?’ 하지만 저자는 단순히 그림 속 남자들의 겉모습만을 얘기하지 않는다. 그렇다고 ‘내면의 아름다움’에 대한 진부한 수식어를 늘어놓는 것도 아니다.
자크 루이 다비드의 누드화는 “제3의 남성상”, 남자다운 신체 특징을 고루 갖추었음에도 섬세하고 유혹적이며 부드러운 양성적 아름다움을 구현했다. 정신분석학자 지크문트 프로이트의 손자였던 루시안 프로이트에게는 뚱뚱하고 살이 늘어진 친구의 알몸이 영감을 주었다. 이처럼 미술이라는 거울에 비친 남자들은 여심을 흔들 뿐만 아니라 남성이 자신의 잠재된 면, 새로우면서도 낯설지 않은 모습을 재발견하게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