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이지 유신 이후 근대화의 필요성을 느낀 일본은 군함인 운요호를 동원해 조선의 해안을 마음대로 측량하고 총탄을 쏘는 등 강화도 앞바다를 무단으로 침탈하였다. 이에 조선군은 포를 발사했고, 일본은 기다렸다는 듯 이를 빌미로 강화도 조약을 맺게 된다. 『왜 강화도 조약은 불평등 조약일까?』는 1876년(고종 13년)에 체결한 조선과 일본의 강화도 조약을 주제로 한다.
강화도 조약은 조선이 외국과 맺은 최초의 근대적 조약이긴 했으나, 조선에 절대적으로 불리한 내용이었으며 이후 일본은 ‘수호 조규 부록’과 통상 협정인 ‘조일 무역 규칙’을 체결하면서 조선에 대한 경제적 침탈의 발판을 마련하였다. 이후 조선은 미국을 비롯한 영국, 독일, 러시아와도 조약을 맺게 되며 중국 중심에서 탈피하나 이들 조약 모두가 불평등함을 담고 있었다.
『왜 강화도 조약은 불평등 조약일까?』는 강화도 조약을 체결할 당시 조선 측 협상 대표였던 신헌이 일본 측 협상 대표인 구로다 기요타카를 상대로 불평등 조약의 부당함을 알리고자 한다. 원고 측 증인으로는 고종과『매천야록』을 집필한 황현, 개화 사상가 오경석이 등장하며 피고 측 증인으로는 명성 황후, 갑신정변 때 한성 조약을 체결한 이노우에 가오루가 등장해 당시 상황을 자세히 설명한다. 문호 개방에 대한 준비가 되어있지 않았던 당시 조선의 시대상과 강화도 조약이 조선의 근대화에 어떤 영향을 미쳤는지 살펴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