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까지 그림책은 어린이의 소유물로 여겨졌고, 성인용 그림에세이에서 그림은 글을 보충해주는 역할을 하는 데 머물렀다. 이 책은 이런 공식을 깬 ‘어른을 위한 그림책’이다. 창작그림책처럼 주인공 달팽이의 모험담이라는 일관성 있는 스토리를 가지고 있지만, 동물이 주인공이라고 해서 어린이 눈높이에 맞춘 글일 것이라고 속단하면 안 된다. 140쪽밖에 안 되는 적은 분량 속에 인생과 세계에 대한 번득이는 사유가 시적인 문체에 담겨 있다. 그림 또한 눈을 현혹하는 화려함 대신 조용한 사색의 공간으로 우리를 이끈다. 한마디로, 한 장 한 장 골똘히 들여다보게 하고, 자꾸자꾸 되돌아가서 읽고 보고 어루만지고 사유하게 만드는 묘한 매력을 지닌 책이다.
달팽이는 이 세상에서 가장 느린 동물이라고 한다. 남들이 보면 부러워할 법한 집 한 채를 날 때부터 지니고 있지만, 그 집마저 깨지기 쉽고 달팽이를 짓누르는 짐이 되기 일쑤다. 이 책의 주인공 달팽이도 처음엔 느리고 연약한 자신의 모습에 괴로워하고 막막해하지만, 쉬지 않고 자기 길을 꿋꿋이 걸어간다. ‘외유내강’이란 말이 딱 어울리는 이 달팽이 이야기는, 특별한 재주도 타고나지 못하고 내세울 만한 ‘스펙’도 없어서 살아가기가 팍팍한 이 시대 수많은 ‘달팽이들’에게 커다란 위로와 용기를 전해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