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유롭고 평화로운 대한민국을 위하여,
국가와 민족을 사랑한 대한민국임시정부의 군무총장 노백린
노백린은 우리나라 최초의 근대 관비 유학생으로 일본육군사관학교를 졸업한 후 귀국하여 무관으로 지내다가 국망 이후에는 무장투쟁을 주요 독립운동 방략으로 활동했던 정통 군인 출신의 독립운동가이다. 노백린은 황해도 출신이었으나 교육은 일본에서, 무관생활은 서울에서, 독립운동은 하와이와 미국 본토 윌로우스(Willows) 그리고 상하이를 중심으로 활동했던 독립운동가이다. 대한제국의 무관이었던 그는 육군무관학교 교장으로 재직 중일 때 군대 해산으로 관료생활을 접었으나, 이후 독립운동에서도 대한민국임시정부의 군무총장에 임명될 만큼 자타가 인정하는 정통 군인이었다.
노백린의 가장 빛나는 업적 중 하나는 미국 샌프란시스코 근처 윌로우스 지방에서 독립공군을 양성한 일이다. 노백린 장군은 제1차 세계대전에서 공중전의 가능성을 보며, 차후 독립전쟁에서도 공군력이 전쟁의 승패를 좌우할 것이라는 판단하에 윌로우스에서 한인사회의 후원을 받아 독립공군을 양성하여 일본과의 독립전쟁에 투입될 한인 조종사를 양성했다
노백린은 1926년 1월 22일 우리 나이로 52세가 되던 해 지병으로 망명지 상하이에서 순국했다. 병환으로 정신이 혼미한 상태에서도 “정복 입고 남대문에 입성”하고 싶다는 소원을 자주 주변 사람들에게 말했다고 한다. 그는 혼미한 정신에서도 자신이 대한민국임시정부의 군인이자 광복된 독립국가의 군인으로서 서울에 입성하고 싶은 희망을 놓지 못했다. 독립공군 육성에 헌신한 대한민국임시정부 군무총장 노백린은 자손들에게 “국가와 민족을 사랑하라”고 가르쳤던 노백린은 독립운동을 위해 전전긍긍하던 이역만리 타국에서 광복되지 못한 조국의 현실을 뒤로하고 가난 속에 가족을 남겨놓은 채 세상을 떠났다.
정부에서는 노백린 장군에게 1962년 3월 1일 제43회 3?1절 기념식에서 건국훈장 대통령장을 추서했다. 그가 평소 가족들에게 몸과 마음으로 가르쳤던 애국심 때문이었는지 그의 아들 노태준 역시 독립유공자로 국립묘지에 안치되었고, 차녀 노순경도 독립유공자가 되어 2대에 걸친 독립유공자 집안이 되었다. 2대에 걸친 독립유공자 가문이라는 명예는 노백린 장군이 자녀들에게 몸과 마음으로 뿌린 애국애족 정신의 결과이며, 노백린 장군과 그 가족들이 남긴 삶의 궤적은 그들의 헌신으로 풍요로운 오늘을 살아가는 우리들에게 시사하는 바가 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