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때는 호더스였다. 지금은 미니멀리스트,라고 말하고 싶지만 아직도 호더스 기질이 다분하다. 예전보다는 물건을 많이 정리하고 있다. 책과 옷, 문구류를 모았다. 벽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책장에 책을 꽂아 놓았다. 행거를 여러 개 사서 옷을 걸어 두었다. 책을 많이 읽는 사람이 패션 피플이 되지도 못했다. 물건에 갇혀 살면서 매일이 불만스러웠다. 그러다 사사키 후미오의 『나는 단순하게 살기로 했다』를 읽었다. 빈 방이 아름다웠다. 물건이 없는 삶을 동경하면서 정리를 했다. 추억의 물건이 많았다. 버리고 버리고 계속 버렸다. 놀라운 일은 이미 많은 것을 버렸다고 생각했는데 정리를 시작해보면 버릴 물건이 또 나왔다.

습관처럼 쇼핑 앱에 들어간다. 특가, 세일, 1+1, 한정이라는 단어가 날 유혹한다. 사 놓으면 쓰지 않을까. 꼭 필요한 일이 생길 거야 하고는 결제한다. 결제 시스템은 얼마나 간편하게 돼있는지. 카드 등록만 해 놓으면 순식간에 결제 완료가 뜬다. 배송도 빠르다. 결제하고 오 분도 지나지 않은 것 같은데 배송 중이다. 물건의 유혹에서 벗어날 수 없을까. 옷은 많은데 정작 입는 옷만 입는다. 예쁘고 귀여운 양말을 사 놓고도 구멍이 날 것 같은 낡은 양말만 신는다. 아끼다 똥 된다. 내 경우가 그렇다. 크고 무늬가 화려한 우산이 있는데 나중에 써야지 했다가 천이 삭아 있었다. 신발도 삭는다는 것을 깨달았다.

『미니멀라이프 물건 관리와 정리법』을 전자책으로 읽었다. 종이책을 처분하고 전자책 리더기를 사서 유용하게 쓰고 있다. 책장을 전부 정리하고 대신에 전자책을 사서 읽는다. 일본의 미니멀리스트를 소개하며 각자의 물건 관리와 정리 법을 소개한다. 깔끔하게 정리된 집의 내부 사진을 보며 위로받는다. 기름기 없는 그릇은 세제를 묻혀 쓰지 않는다. 물건 하나가 들어오면 하나는 정리한다. 덩치가 큰 수납 가구 대신 작고 이동성이 편한 수납 도구를 쓴다. 장 보는 날을 정하고 생필품은 다 쓰고 산다.

생활감이 없는 것처럼 보일 수 있지만 그들은 실제 정리한 집에서 살고 있다. 수세미를 없애는 혁명을 보여주기도 한다. 인터넷 쇼핑을 할 때 '고민하는 이유가 가격이라면 사고, 사는 이유가 가격이라면 사지 않는다'라고 고민이 되면 주문처럼 외운다는 문장을 읽고 고개를 끄덕였다. 방금 싸다고 물건 하나를 장바구니에 쏘옥 넣었기 때문이다. 필요하지 않은데 싸서. 언젠가는 필요할 것 같아서. 바로 장바구니를 비웠다. 양말과 속옷 서랍을 정리하려고 벼르는 중이다. 곤도 마리에 식의 옷 접기 법을 마스터했다. 옷은 세워서 수납하는 것 말이다. 물건을 정리할 때 팁은 가지고 있는 물건을 전부 꺼내어 보는 것이다.

여러 군데 나누어 있는 물건을 한 데로 모아놓고 시간제한을 두고 꼭 필요한 것만 남긴다. 얼마 전에 행거에 걸린 옷을 정리했다. 10초의 시간을 두고 입을 옷만 추렸다. 시간제한이 있으니 우선 남길 옷을 고르는데 신속하게 결정할 수 있었다. 혼자서 별걸 다하고 있네 하는 생각이 들겠지만 물건 지옥에서 벗어나는 나름의 방법이다. 일본 사람들은 동일본 대지진 이후에 물건이 생명을 앗아갈 수 있다는 걸 경험했다. 지진 대비에 필요한 물품을 따로 꾸려 놓고 넘어지면 위험한 가구를 두지 않는다. 생활에 꼭 필요한 물건들만 남겨서 하루를 기분 좋게 살아가는 법을 터득했다.

물건이 없으면 피곤이 줄어든다. 『미니멀라이프 물건 관리와 정리법』에는 일본 주부의 미니멀라이프 노하우가 정리되어 있다. 최고의 인테리어는 비어있음이라는 걸 이 책은 말하고 있다. 깔끔하고 세련되어 보이려고 그릇을 세트로 살 필요는 없다. 있는 것을 잘 활용해서 쓰면 된다. 짝이 맞지 않는 숟가락과 젓가락을 쓰고 세제의 상표는 안 보이게 돌려놓으면 된다. 책의 마지막 옷장 정리 법에서 양말을 접는 요령을 배웠다. 잠에서 깨면 이불은 꼭 개려고 노력한다. 지난주에 세일한다고 마트를 두 번 간 건 비밀이다. 이 책을 읽기 전에 한 행동이다. 책을 읽었으니 냉장고 파먹기에 돌입해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