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96년, 고종의 아관파천으로 조선은 친일 내각이 물러난 대신, 친러 내각이 성립되었고, 러시아를 비롯한 열강의 침탈은 날로 심해갔다. 이즈음 갑신정변이 실패하자 미국으로 떠났던 서재필은 국내로 다시 들어와『독립신문』을 발간하는 한편, 외세 의존을 벗어나 자주 독립을 주장하며 윤치호, 이상재 등의 지식인들과 함께 독립 협회를 설립하였다. 독립 협회는 강연회와 토론회를 열어 민중에 근대적 지식과 국권, 민권 사상을 고취하였고, 만민 공동회와 관민 공동회를 열어 헌의 6조를 결의함으로써 중추원을 개편하여 의회를 만들려고 하였다. 하지만 이를 견제하던 보수 세력과 고종은 황국 협회를 이용하여 독립 협회를 탄압하였으며 이로 인하여 독립 협회는 3년 만에 해산되고 말았다.
「역사공화국 한국사법정」 시리즈『왜 독립 협회는 해산되었을까?』에서는 당시 갑신정변의 주역이었던 김옥균을 살해하고, 독립 협회가 개최한 만민 공동회를 습격했던 홍종우가 독립 협회를 해산하고 자신이 보수 세력을 옹호했던 것은 정당한 일이라며 독립 협회 운동을 이끈 윤치호를 법정에 세웠다. 자주 국권과 자유 민권을 외쳤던 독립 협회는 왜 해산되었으며, 이것이 향후 조선에 미친 영향은 어떠할까? 증인으로 서재필, 이상재, 주시경, 박은식, 정교 등의 인물이 등장하는데, 이들의 증언을 통해 침탈된 조선의 국권을 지키기 위해 우리 민족은 어떠한 노력을 했는지가 상세히 설명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