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레플리카란 무언인가?
이 책에서 말하는 레플리카(Replica)란 1970년대 이전에 나왔던 몇몇 청바지를 완벽하게 재현 제작하는 것을 목표로 일본에서 시작된 패션 문화를 뜻한다. 의류업계에서 흔한, 정교한 불법 카피 제작과 방식은 비슷하지만 이 청바지 복각 문화는 디자인을 넘어서 당시의 원단과 제작 방식, 공장 기계 등의 생산 기법과 설비는 물론, 당대의 문화와 사회상까지 담아내려는 집요함에서 큰 차이가 있다. 청바지에서 시작한 레플리카는 비슷한 시기에 나왔던 작업복, 아웃도어, 밀리터리 의류 등등으로 확장되었으며, 오늘날 남성복의 한 흐름을 주도하고 있다.
2. 디자이너와 경영자가 주인공이 아닌
조금 다른 패션과 옷 이야기
그동안 패션계는 디자이너 혹은 전문경영인이 구심점이 되어 이끌어왔다. 그런데 1980년 즈음 일본과 프랑스 패션계에 새로운 기류가 형성되었다. 디자이너나 전문경영인이 아니라, 생산자, 즉 의류 제작 장인과 제조공장을 중심으로 운영되는 브랜드가 생겨나기 시작한 것이다. 이러한 기류는 특히 일본에서 급물살을 탔다. 이후 30여 년이 흐른 오늘날, 생산자 중심 브랜드는 패션계를 움직이는 중요한 축으로 성장했다.
이 책에서 소개하는 브랜드들의 옷은 언뜻 보면 비슷비슷하다. 2차 세계 대전 당시의 군복과 그 시절의 워크 웨어, 1940년대나 1960년대의 스웻 셔츠 등 과거에 완성된 몇 가지 유형의 모델만을 다룬다. 심지어 과거에 있었던 예전 디자인의 옷을 똑같이 만들어내는 것이 목표인 브랜드도 있다. 패션이 본래 각자의 개성, 즉 남과 다름을 목표로 삼는다는 점에서 이러한 움직임은 이율배반적으로 보인다. 하지만 이런 흐름 속에서 옷을 ‘어느 지역’에서 ‘어떤 방식’으로 제작했는지가 마치 디자이너의 이름이나 브랜드 로고처럼 브랜드의 정체성을 드러내는 요소이자 값어치가 되었다. 더구나 그 정체성은 추상적인 개념이 아니라 실제로 일본 오카야마나 미국 노스캐롤라이나 등에서 실제로 가동되는 공장이며, 수십 년 이상 한 분야에 종사해온 숙련공이다.
Made in USA, Made in Japan를 너머,
Made in Brooklyn, Made in Okayama의 시대로
지금까지 의류 생산자와 제조업체는 디자이너와 경영자 뒤에 가려져 있었지만 생산 주체를 중시하는 새로운 기류 덕분에 이들이 나설 수 있는 영역이 생겼다. 그 덕분에 소위 사양 산업으로 여겨지던 전통 의류 제조업이 새로운 형태로 패션계에 재등장했다. 《레플리카》는 이처럼 고급 패션과 대중 패션의 틈을 파고들어 제3의 영역을 구축하는 데 성공한 생산자 중심 브랜드를 조명하고 그들과 소비자들이 함께 만들어간 문화와 역사를 들여다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