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암(農巖) 김창협(金昌協, 1651~1708)은 조선 후기의 문신이자 학자로, 18세에 진사시에 합격하고 31세에는 증광문과의 전시장원으로 급제하여 출사하였다. 이어서 병조좌랑, 사헌부지평, 부교리 등을 거쳐 교리, 이조좌랑, 이조정랑, 동부승지, 대사성, 대사간 등을 역임하였으며 명에 의해 송시열(宋時烈)의 『주자대전차의(朱子大全箚疑)』를 교정하였다. 그는 기사환국(1689) 때 아버지가 진도로 유배되자 사직하고 영평(永平, 현재 경기도 포천시)에 은거하였으며, 갑술환국(1694)으로 정국이 바뀌어 아버지가 신원됨에 따라 호조참의, 예조참판, 홍문관제학, 대제학, 세자우부빈객 등에 임명되었으나 모두 사직하고 학문에만 전념하였다.
《농암진적(農巖眞蹟)》은 김창협이 친필 시문이나 서찰 등을 모아 분류한 장첩이다. 대부분이 김창협의 족질(族姪)인 김시좌(金時佐, 1664~1727)에게 보낸 편지인데, 그의 후손에 의해 대대로 전해지다 김성근(金性根)에 의해 장첩되었다. 《농암진적》은 『농암집(聾巖集)』에 수록되지 않은 글이 대부분이며, 일부는 『농암집』에 수록할 목적으로 편집한 흔적이 보여 『농암집』의 편찬 과정을 엿볼 수 있다. 이 책은 《농암진적》중 수(水) 목(木) 금(金) 토(土)의 4첩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그의 사상과 학문을 엿볼 수 있는 중요한 자료이다. 특히 탈초와 국역을 실어 연구자는 물론 일반 독자의 이해를 돕도록 구성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