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약 철학이 인간의 삶에 유용하지 않다면
그것은 어디에도 유용하지 않은 것이다
혹시 ‘스토아’ 하면 ‘금욕주의’가 떠오르는가? 그야말로 암기식, 주입식 교육의 폐해가 아닐 수 없다. 어째서 스토아주의가 금욕주의란 말인가. 이는 여름을 50도까지 올라간 아스팔트라고 정의하는 것과 같다. 여름은 오직 뜨거움으로 묘사하기에는 너무나 아쉬운, 초록빛 넘실거리는 자연과 청량한 냉음료의 매력도 한껏 느낄 수 있는 그런 계절이 아니던가.
도덕?윤리 교과서에 반드시 등장할 만큼 오랫동안 회자되어온 스토아 철학은 아주 익숙한 이름이지만, 사실 우리는 평생 스토아를 제대로 알아본 적이 없다. 그런 스토아에 다시 한 번 시선을 모으려는 시도가 여기에 있다. 인문 신간 ?그리고 나는 스토아주의자가 되었다?의 저자 마시모 피글리우치는 그 자신이 스토아 ‘덕후’다. 유전학, 진화 생물학, 철학 분야에 박사 학위를 가지고 있는 저명한 학자인 그는 자신의 삶에 스토아를 끌어들인 후부터 그야말로 인생이 바뀌는 경험을 했다고 말한다. 더 많은 사람들에게 스토아의 진짜 얼굴을 보여주는 것이 철학자로서의 사명인 듯, 마시모는 따끈따끈한 스토아주의를 이용해 오히려 인생의 뜨거움을 식히는 방법을 알려준다.
노력은 매우 중요하다
그런데 그게 정말 노력할 만한 일인가?
책의 첫머리에서 마시모는 ‘우리는 어떻게 살아야 할까’라는 질문에 답하기 위해 인류사에 고안된 셀 수 없이 많은 종교와 철학의 이름들로 운을 띄운다. 그러고는 과학자이자 철학자인 자신은 수많은 답들 중에서 이성적이고 과학 친화적인 스토아 철학을 발견했으며, 아직 능숙한 스토아주의자는 되지 못했지만 이를 체화시키기 위해 노력하는 중이라 고백한다.
왜 사느냐가 아니라 어떻게 사느냐고 묻는 스토아주의는 흔한 편견처럼 감정을 억눌러야 한다고 주장하는 그런 철학이 전혀 아니다. 오히려 감정을 수긍하고, 무엇 때문에 그런 감정이 생겼는지 반성하고, 그 감정을 유익한 방향으로 바꾸어나가는 일과 관련이 있다. 또한 무엇이 자기 통제하에 있고 무엇이 그렇지 않은지를 계속 유념하여 전자에 노력을 집중하고 후자에는 노력을 낭비하지 않는 일과도 관련이 있다. 그런데 가만 생각해보면 이거야 말로 현대인을 위한 게 아닌가? 내 감정을 관리하는 방법을 알려주는 철학이라니…….
분노와 무능력, 가족과 타인에 대한 태도, 신, 세계시민주의, 자살 등 아주 다양한 현실의 주제들에 대한 이해의 토대를 제공하는 스토아는 ‘실천 철학’이라는 이름에 걸맞게 처음부터 끝까지 우리 인생의 크고 작은 선택에 도움이 될 기준들을 제공해준다. 빅터 프랭클의 의미치료, 앨버트 엘리스의 합리정서행동치료를 포함해 수많은 증거 중심 심리 치료법들의 철학적 뿌리가 스토아임을 밝히는 대목에서는 이미 반쯤 스토아주의에 빠져든 자신을 발견하게 될지도 모른다.
교과서에나 나오는 사장된 단어쯤으로 치부했던 스토아에 대한 마시모의 이야기를 듣다 보면 스토아뿐만 아니라 철학에 대한 인상마저 바뀌게 된다. 스토아는 이상적인 사회를 상상하는 대신 있는 그대로의 세계를 받아들이고 (실제적) 지혜, 절제, 정의, 용기라는 네 개의 기본적인 덕을 통해 수양을 추구한다. 하지만 굳이 이런 단어들을 외워야 한다는 압박 없이 그냥 읽으면 된다. 저자가 다양한 상황을 알아서 소개하고 거기에 맞는 우리의 태도를 알려준다.
마시모는 독자에게 스토아주의란 무엇인지 알려주기 위해 스승이자 친구인 에픽테토스를 현대로 소환한다. 자신에게 주어진 오직 한 번의 인생을 낭비 없이 사는 방법에 대해 묻고 또 묻는다. 때로는 첨예하고 때로는 서로에게 감화되는 그들의 대화를 지켜보고 있노라면 철학을 어떻게 나의 일상으로 끌어들일 수 있는지에 대한 힌트를 얻을 수 있다. 거기에다 저자가 꿋꿋하게 펼쳐 놓는 자신의 ‘흑역사’들과 스토아가 바꿔준 생각의 틀, 흥미로운 에피소드들을 듣다 보면 단지 이론에 불과하다 치부했던 삶의 태도를 내 것으로 만들고, 쓸데없는 인생 낭비를 그만 둘 수도 있을 것 같다는 희망이 생긴다.
“에픽테토스의 결정적인 요점 중 하나는 우리에게 이상한 경향이 있다는 것이다.
우리는 자신이 통제할 수 없는 정확히 그런 것들을 걱정하고 거기에 에너지를 집중한다.”
_?그리고 나는 스토아주의자가 되었다?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