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책의 저자는 지난 몇 년간의 싸움으로 지쳐 있는 페미니스트에게 위로의 말을 건넨다. 커다란 일을 하지 않아도, 자신의 마음을 남성으로부터 지켜낸 것만으로도 충분히 잘하고 있다고. 그것만으로도 너무나 힘든 싸움을 한 것이라고. 누구나 그렇게, 흔들리며 페미니스트가 되어가는 것이라고.
페미니스트가 된다는 것은 단순히 남성을 대적하는 사람이 된다는 것을 의미하지 않는다. 그보다는 자꾸만 강자의 위치를 선망하고 그들의 이익을 대변하려 하는 자신 안의 비겁함을 직면하고 맞서 싸우는 일이다. 그렇기에 페미니스트가 되기로 결심한 여성들은 이 내면의 전쟁만으로도 이미 녹초가 되고 만다. 대표적인 자유주의 사상가 존 스튜어트 밀은 『여성의 종속』이라는 저서에서, 여성에 대한 지배가 다른 모든 종류의 지배보다 더욱 끔찍한 것은 바로 여성의 마음을 지배하려 하기 때문이라고 지적한 바 있다.
남성과 여성의 성별 싸움은 이처럼 여성의 마음속에서 이루어진다. 남성들은 여성을 진심으로 남성의 이해관계에 동조하게 만들기 위해, 여성인 척 여성 커뮤니티에 잠입하여 여성들을 훈계한다. 그리고 자신의 마음에 들게 행동하는 여성에게는 ‘개념녀’라는 훈장을, 그렇지 않은 여성에게는 ‘김치녀’라는 모욕을 줌으로써 여성들의 행동뿐 아니라 마음까지도 조종하고 통제하려 한다.
여성운동의 본질은 바로 여기에 있다. 여성운동은 자신의 마음을 지배하려 하는 남성의 시도에 맞서 싸우는 일이며, 그렇기에 페미니스트들은 다른 누구보다도 자기 자신과 가장 치열한 싸움을 벌일 수밖에 없다. 이미 자기 자신과의 싸움만으로도 충분히 지친 사람들은 동료를 포용할 정신적 여유가 없다. 최근 여성들끼리 서로 상처 주는 일이 늘어난 것도 여기서 비롯된 것으로 짐작한다.